Londo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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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후회한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
2015년에 샤미마 베굼(Shamima Begum)을 포함한 세명의 여고생이 부모님 몰래 영국을 떠나 IS에 가담했다. 당시 베굼의 나이는 15세였다. 2019년 2월 영국 타임지 기자가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그녀를 발견했을 때, 임신 상태였으며, 낳은 아이 중에 두 명은 죽었고, 한 명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영국으로 돌아가길 희망하지만, IS에 가담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IS는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서방 세계를 박멸의 대상으로 삼은 조직이었으며, 많은 테러를 자행했다. 영국 내무부(Home Office)는 보도 직후에 그녀의 국적을 박탈하였고, 영국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선언했다. 여론의 76%가 정부의 발표를 지지했다. 베굼은 내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20년 2월 1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6월에 있었던 2심 재판부는 베굼의 손을 들어줬다.
베굼은 영국 국적회복 소송을 원하며, 소송이 공정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베굼이 일단 영국에 들어와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경우에 공정과 정의는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보다 더 중요하다. 그녀가 입국함으로써 국가안보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MI5(영국국내첨보국)가 감당해야 할 문제다.’
이런 판단에 다수의 영국인은 반대했지만, 보수 언론인 타임지 조차도 2심 판결을 지지하는 듯한 기사를 다수 실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민주적 정부가 변덕을 부리면서 빼앗기도 하고, 돌려주기도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한때 위대했던 나라이며, 지금 그보다 더 위대해지기를 바란다면, 베굼을 집으로 데려와야 한다.’
영국 내무부는 2심 판결에 즉시 반발했다. 베굼이 일단 영국에 입국한다면 국적회복 소송에서 베굼이 진다고 해도 그녀를 강제 출국시킬 방도가 사실상 없다. 그녀가 무국적자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 내무부는 부모가 태어난 나라인 방글라데시로 갈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방글라데시는 입국 즉시 감옥으로 보내겠다고 겁박한 상태다.
이틀 전에 있었던 최종심에서 대법원은 내무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공공의 안전을 포함한 모든 고려 대상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니다.’ 이 판결에 다수의 영국인은 지지를 표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영국이 위대한 나라가 아닌 보통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 준 평범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선제적이며 지속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옹호해 온 나라다. 마그나 카르타에서부터 이어 온 자유주의 전통은 두 명의 토마스와 두 명의 존을 거쳐 오늘날에 이어지고 있다. 토마스 모어(1478-1535), 토마스 홉스(1588-1679), 존 로크(1632-1704),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이 그들이다. 얼마 전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한 결정을 옹호하기 위해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On Liberty)’이 동원된 적이 있다.
‘자유론’에는 개인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강조되고 있지만, 자유의 제한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어느 부분을 더 인상적으로 읽었느냐에 따라 ‘자유론’을 집회 제한에 대한 찬성의 근거로 사용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사용할 수도 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 스튜어트 밀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자유론’을 읽지 않은 사람에 가하는 하나의 폭력에 불과하다. 폭력에 폭력 하나를 더해보면 이렇다.
“나는 자유에 관한 아주 간단명료한 단 하나의 원리를 천명하고자 한다. 사회가 개인에게 법이라는 이름의 물리적 제제를 가하거나 여론의 힘을 통해 도덕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경우는 최대한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인간 사회에서 개인이든 집단이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 간섭당하는 사람의 물리적 또는 도덕적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간섭하는 것도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에 다 반영되어 있는 구절이다. 존 로크는 ‘개인의 자유를 증진하고 안전을 보장할 목적으로만 국가는 개인의 삶에 개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베굼의 영국 입국이 타인의 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있을까? 있다면, 그 정도는 어떻게 측정될 수 있을까?
베굼은 IS에 가담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 말로 인해 그녀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겨질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거나, 타임지가 그 말을 그대로 전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녀가 기자가 아닌 변호사를 먼저 만났고,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후회한다’고 말했다면, 그녀는 영국에 올 수 있었을까? ‘여론의 힘을 통해 도덕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경우는 최대한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한다’는 밀의 ‘자유론’ 구절은 테러에 대한 두려움 앞에 의미를 상실하는가?
영국의 대법관은 12명이며, 판단해야 할 이슈에 따라 12명 중에 일부가 재판관으로 참여한다. 홀수로 판정단이 구성되는데 이번 판결에 몇 명이 참여했는지는 모르지만, 참여 재판관 전원의 만장일치로 판결이 이뤄졌다. 판결의 결론도 실망이지만, 만장일치라는 것은 더한 실망이다.
그녀가 후회한다고 말했다면 결과는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더 자주 후회하고 더 자주 뉘우치는 것이 내게도 좋을까 생각해 본다. 도덕적인 압력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압력에 굴복하는 것도 간혹 필요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걸 도덕적인 굴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날마다 회개하고 날마다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겠다. 난 많은 것을 후회한다. 그리고 나는 간혹 후회하지 않더라도 후회한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