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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r 04. 2021

비극이 되고 싶은 희극

London Life

London Life 2.0

(5) 비극이 되고 싶은 희극
  
  
찰리 채플린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이 한 유명한 말이다. 영어로 하면 더 잘 와 닿는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채플린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영화인이었고 뛰어난 코미디언이었지만, 그의 인생도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다. 가난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런던의 피카디리에서 배우로 데뷔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큰 성공을 이뤘지만, 메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신음하다가 도망치듯이 미국을 빠져나왔다. 다시는 미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선택한 곳은 고향인 런던이 아니고 스위스였다. 광란의 시대 분위기에서 영국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게 채플린은 스위스에 묻혔다.




헤겔과 마르크스

비극과 희극을 주제로 한 말로 더 유명한 것도 있다. 칼 마르크스가 ‘브뤼메르 18일’의 첫 문장으로 꺼낸 말이다.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은 비극으로 다음은 희극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헤겔의 저작 어디에도 마르크스가 인용한 부분은 없다고 한다. 마르크스의 비극/희극 언급은 ‘희극’이라는 단어의 특징 때문에 자주 잘 못 인용된다. 희극은 해피엔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희극은 해피엔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웃기기는 하지만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의미다.

비극은 그 결과가 슬퍼서 그렇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며, 인생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비극에는 삶의 위대성이 녹아 있다. 나폴레옹은 슬픈 엔딩이었지만, 세계사의 한 획을 긋는 주목할 사건이었다. 나폴레옹의 흉내를 낸 나폴레옹의 조카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에 불과하다고 마르크스는 지적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은 평균 이상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코미디는 평균 이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평균 이상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이 때로는 비극을 낳는데, 욕망의 성취로 인해서가 아닌 욕망이 가져온 비극으로 인해 평균 이상이 되는 것은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The Times

영국의 정론지(?) 타임스는 어제오늘 영국 왕실을 떠난 메건 마클(Meghan Markle)을 비판하는 기사를 연달아 싣고 있다. 정책에 대한 비판은 날카로워도 사람에 대한 비판은 최대한 자제하는 타임스가 연속해서 개인에 대한 비판 기사를 내는 것은 드문 일이다. ‘살인 교사자인 사우디 왕자에게 귀걸이 선물을 받았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고, ‘왕실 근무자를 의도적으로 괴롭혔다’는 기사도 있었다. 메건 마클과 해리 왕자는 충격적인 불량배(outrageous bullies)였다고 썼다. 괴롭힘(bullying)은 언제나 민감한 이야깃거리이기 때문에 사람을 공격할 때 ‘그가 과거에 괴롭힘의 당사자였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것이 별로 없다. 타임스는 왜 작정을 하고 나왔을까?

메건 마클은 왕실에 대한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제공하는 대가로 1100억 원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메건 마클과 해리 왕자의 이야기는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미국 시간 3월 7일에 방송될 예정이다. 미국 시간 3월 7일 저녁은 대부분의 나라 시간으로 3월 8일이다. 이 날은 세계 여성의 날(보시모이 마르따)로 상징성이 매우 크다. 시간 선택이 아주 예술이다. 오프라 윈프리 쇼가 성공적으로 어필되면 메간 마클이 제공하게 될 컨텐스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메간 마클의 연설의 가치는 클린턴이나 오버마가 퇴임 후에 누렸던 가치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시간 스피치에 100만 불 이상의 돈을 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방송에서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상관없이 흑인 혼혈, 미국인, 이혼한 경력이 있는 여성이 영국 왕실에서 겪었을 고뇌가 시청자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다. 그녀는 희생자의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다. 그리고 전통 사회의 차별에 저항하는 현대 여성의 모습으로 미국 사회에 재입성하기를 원하고 있다.

영국 왕실은 그녀의 몸값과 그녀가 공개할 정보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가 공개할 정보의 진실성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선빵을 날린 것인가?




메건 마클

왕실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메건은 처음부터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왕실에 입성한 첫날부터 왕실로부터 거부되는 동화 속 주인공이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희생자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하기에는 나가도 너무 나갔다. 막 나가자는 것이다.

왕실 관계자의 말이 사실에 가깝다고 하면, 메건 마클이 꿈꾼 것은 신데렐라가 아니고 다이애나 왕비일 수도 있다. 다이애나 왕비가 가질 수 있는 셀럽으로서의 파워를 상상해 보자. 그것도 죽음에서 돌아온 다이애나의 영향력을 상상해 보자. 메건 마클이 망상에 빠져 볼만한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채플린이냐? 마르크스냐?

오프라 윈프리가 맞다면, 시청자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을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코미디다. 타임스의 말이 맞다면, 망상에 빠진 그녀를 보며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말을 떠올릴 것이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 번은 코미디로’

타임스 기사만 나와 있고, 오프라 윈프리 쇼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단은 이르다. 생각은 양면적이다. 비극이 되고 싶은 희극은 과연 그 뜻을 이룰 수 있을까? 코미디보다는 비극이 좋고, 비극보다는 해피엔딩이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해피엔딩의 미래를 꿈꾸는 나는 그래서 평균 이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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