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London Life 2.0
(7) 스코틀랜드 야드와 투르크메니스탄의 거리
영국 경찰은 되도록 개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런던에는 세 개의 경찰 조직이 있다. 런던의 중심지인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 서울의 종로에 해당)만을 관할하는 시티 경찰이 있고, 지하철과 전철을 관할하는 철도경찰이 있고, NYPD나 LAPD와 같이 도시를 총괄하는 메트로폴리탄 경찰이 있다.
런던 메트로폴리탄 경찰청은 웨스트민스터 옆에 자리 잡고 있다. 템스강을 사이에 두고 런던아이(London Eye)와 서로 를 마주 본다. 건물 앞에는 New Scotland Yard라는 표지만이 확연하며, 경찰이라는 표시는 돌판에 음각되어 있기는 하지만, 희미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최초의 런던 경찰청이 Great Scotland Yard 거리에 있었다. 그 이름을 따서 메트로폴리탄 경찰을 스코틀랜드 야드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제는 경찰 활동 자체를 스코틀랜드 야드라고 부른다. 미국 증권업계를 월스트리트라고 칭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경찰청 건물에 경찰청이라는 표식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런던 경찰은 시민에게 들어 나는 것을 싫어하는가? 의식 속에는 경찰은 들어나지 않아야 할 존재라는 생각이 있는 것일까?
스코틀랜드 야드는 어제오늘 뿔이 났다. 메건 마클과 해리 왕자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서 한 말 때문이다. 메건 마클은 자신의 아들에게 왕자라는 타이틀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호 대상에서 빠지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왕자라는 타이틀이 꼭 필요하냐?’는 오프라 윈프리의 질문에 아들의 안전과 관련되어 있기에 중요하다고 답했다.
스코틀랜드 야드의 전현직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1) 경호는 왕자라는 칭호와는 무관하며, 2) 경호 여부는 정보기관과 경찰이 공동으로 판단하는 위험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며, 3) 납세자의 돈으로 유지되는 스코틀랜드 야드는 로열 패밀리와 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경호를 제공하지 않으며, 4) 무조건 경호를 받는 자리는 왕실과 정부의 상당한 고위직에 한하며, 5) 해리 왕자의 아들은 영국에 있을 당시에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경호 이슈가 전혀 없었으며, 6) 어떠한 이유로든지 경호 필요성이 대두되면, 이제는 그 일을 FBI와 LAPD가 수행하면 될 것이다.
런던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차량이 우회전을 하고 싶었는데 직진 차량의 정체에 막혀 있었다. 자전거 도로를 침범해 조금만 가면 앞 차와 관계없이 우회전이 가능했다. 자전거 도로를 침범한 순간 맞은편에서 자전거가 왔다. 사이클리스트는 차량을 막았고, 서로 고성이 오갔다. 마침 교통경찰이 맞은편에서 오고 있었다. 사이클리스트는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모든 과정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상황을 파악한 경찰은 차량 운전자에게 후진으로 원 위치로 가게 했고, 직진 차량이 빠지면서 차는 우회전하여 가려던 길을 갔다. 자전거 운전자는 이 영상을 SNS에 올려도 되는지 경찰에게 물었고, 경찰은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찍은 영상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온전한 당신의 자유입니다.’ 영상은 SNS를 타고 퍼져 운전자는 망신을 당했다.
경찰은 개인 간의 다툼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지 않았다. ‘아저씨가 잘못했네!’라는 말은 없었다. 운전자의 과실을 정정했지만, 운전자에게 어떤 벌금도 부과하지 않았고, 운전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경찰의 태도가 놀랍게 느껴졌고,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메건 마클과 해리는 왕실의 의무보다는 자유를 택했다. 그러면서도 캐나다에서도 미국에서도 경호 문제에 집착했다. 경호를 받는 인생은 자유로운 인생과는 거리가 있다. 둘 다를 모두 가지려고 하는 것을 흔히 도둑놈 심보라고 한다. 원한다면 사설 경호원을 고용하면 된다. 그걸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이 생기면 경호가 더 강화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또 자유가 제약된다. 안전은 자유와 자주 충돌한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아쉬하바드에 출장 간 적이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을 후진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석유와 천연가스가 많아서 경제적으로는 잘 산다. 거리는 깨끗하고, 건물도 꽤 멋지다. 호텔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대부분의 건물이 순백색인 것이 신기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니, 나무 뒤에서 사람이 툭하고 나와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되!’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황당했다. ‘네가 뭔데 사진을 찍지 말라고 그래? 너 개인의 자유가 뭔지 모르지?’라고 따졌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만 하고, 빨리 가! 그리고 다시는 찍지 마!’라고 위압적으로 말하고 나무 뒤로 사라졌다. 별 놈이 다 있네! 정신적인 문제가 있나? 나중에 그곳 사람들에게 말하니, 다들 놀랐다. 그 사람은 경찰이며, 길거리에서 그렇게 건물 사진 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경찰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잡혀 갈 수도 있단다.
그들이 그러는 것은 모두 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란다. 안전이란 무엇인가? 사진은 어떻게 안전을 위협하는가?
스코틀랜드 야드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사진이 필요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어 망설이다가 오후 늦게 메트로폴리탄 경찰청 앞에 갔다. 아이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데, 중무장한 경찰이 나를 향해 손동작을 하며 다가왔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영국도 경찰청 본부는 사진 찍으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이러면 오늘 포스팅은 나가리인데!’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중무장 경찰은 나를 지나쳐 오 미터쯤 가더니, 고개를 숙여 땅바닥에서 뭔가를 주었다. ‘이거 네가 핸드폰 꺼낼 때 떨어진 것 아니야?’라며, 물기를 닦은 후에 주차권을 내게 전해주었다.
메건 마클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왕실은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경호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