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London Life 2.0
- (16) 영어 공부의 한을 풀다.
내게는 영어를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영어로 된 교육기관에서 공부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해외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오지 않아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많다. 나는 영어학원을 다녀보거나 친구들끼리 영어 스터디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나의 영어 실력은 심하게 약한 편이다. 가끔은 언어 잼뱅이가 아닌가 싶지만, 러시아어는 제법 잘한다. 정말이다. 체스나(честно)!
나는 영어를 잘 못하지만,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해 왔다. 영어는 잘하지만 똑똑하지 않은 몇 명과 나를 비교한 후에, 그들을 영어 잘하는 사람 전체로 포장하는 신공을 발휘한 덕분이다. 나와 같은 부류를 제법 보았다. 카자흐스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우리 회사에는 영어를 잘하는 부류와 영어는 못하지만 금융에 대한 전문성이 뛰어난 부류가 있었다. 영어도 잘하고 금융 지식도 많은 사람은 우리 회사에 있지 않고, 보다 더 좋은 건물을 쓰고 있는 HSBC나 UBS 등에 있었다. 금융지식이 뛰어났던 직원들은 영어를 잘하는 직원을 무시했고, 자신들이 더 스마트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착각이다. 스마트한 것과 영어능력은 관련이 없을 것이나, 관련이 있다고 하면 스마트한 사람은 대체로 언어 습득 능력도 뛰어날 것이다.
영어에 대한 한을 풀어보고자 이번 주부터 정규 학위 과정은 아니지만 6주짜리 교육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에서 진행하는 Cryptocurrency and Disruption 과정이다. 과정 비용은 무려 2100파운드에 달한다. LSE는 LBS(London Business School) 보다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교육과정은 대체로 6주로 구성된다. 영국 교육과정은 대학은 3년 3학기며, 대학이전 과정은 13년 3학기다. 일년은 가을학기, 봄학기, 여름학기로 구성되며, 각 학기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보통 6주를 진행하고, 2주 정도의 휴식기를 가지고, 다시 6주를 하고 학기가 끝난다. 그래서 온라인 교육 과정도 6주다.
케인즈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면서 경제학은 한 과목만 청강했다. 수강을 한 것도 아니고 청강으로 전통 경제학을 6주만 공부하고, 그는 자신만의 거시경제학을 만들어냈다. 생각할수록 감탄이다. 6주면 충분한가?
영국에서 12학년을 다니고 있는 우리 큰 아이는 지난해와 올해 총 4개월간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그러면서 학습 효과만을 놓고 보면 온라인 수업이 오프라인 수업보다 좋다고 말해 부모를 안심시켰다.
잘 만들어진 온라인 수업은 지식 전달 수단으로 오프라인 수업에 비해 효과가 크다는 것을 LSE 코스를 들으면서 느끼고 있다. 영상에 자막을 넣을 수도 있고, 강의의 원고도 별도로 제공되며, 강의를 반복해서 돌려 볼 수도 있다. 어려운 부분은 보고, 읽고, 또 볼 수가 있다. 수강자의 피로도를 고려하여 화상 강의와 텍스트 강의가 적절한 길이로 교차되도록 만들어졌다. 같이 수업 듣는 학생 간의 실시간 토론, 채팅방 토론, 쪽지 시험, 과제 제출 및 채점도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나는 이제 영어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고, 더 이상 한은 없게 되었다. 물론 6주 과정을 통해서 내 영어실력이 갑자기 늘지는 못하겠으나, 더 이상 핑계는 없다. 그리고 내가 경제학을 잘 알지 못하는 것도 교육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되었다. 비록 크립토 경제학이기는 하지만 나는 케인즈와 똑같은 양의 경제학 교육을 영국에서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어제 수업 시간에 있었던 내용 중에 인상적인 부분 하나만을 소개하면 이렇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태환 정책을 폐지한 것은 화폐에 대한 컨트롤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화폐가 금태환을 멈춘 것은 각국 정부에 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소극적인 이유 이외에 적극적인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화폐가 금과 연동될 경우에 정부는 화폐를 완전하게 컨트롤할 수 없게 된다. “정부가 화폐를 금과 연동시키지 않는 법정화폐로 만든 것은 인류 역사의 큰 변화의 순간이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가 등장하게 되는 토대가 되었다.” 각국 정부의 화폐정책을 비난하는 일부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금태환을 포기하면서 모럴 해저드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화폐가 금 기반이 아니고 신뢰 기반이 된 것은 중앙은행 덕분이다. 비트코인은 그 성과를 이어받은 것이다. 화폐가 여전히 금과 연동되어 있다면, 비트코인은 논란의 여지없이 화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6주 후에 나는 얼마만큼의 영어 실력이 늘 것이며, 6주 후에 나는 얼마만큼이나 케인즈에 가까워지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