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치
4월 5일 엘리자베스 여왕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맞아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TV에 나왔다. 전쟁이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같은 위기의 순간에 여왕이 느끼는 왕관의 무게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도 여왕과는 다른 입장일 것이다. 임기가 있는 대통령과 왕은 입장이 또 다를 것이다. 넷플릭스 드리마에 The Crown이 있는데, 영국 여왕의 삶을 잘 그려냈다. 이를 통해 여왕의 고뇌를 느낄 수 있고, 왕관의 무게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재임기간 14명의 총리를 상대했다. 젊은 여왕이 상대하기 까다로웠을 윈스턴 처칠, 같은 여성이었지만 서로를 잘 이해했을 것 같지 않은 마가렛 대처, 패기의 젊은 총리 토니 블레어 그리고 보리스 존슨까지 정말 다양한 총리를 만났다.
1964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고 해롤드 윌슨이 총리가 되었다. 보수 언론에서 소련의 스파이라는 색깔론을 펼쳤다. 1960년대는 그런 시대였다. 처음에는 거리를 두었지만, 해롤드 윌슨의 진심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점차 마음을 열었다. 여왕은 재임 기간 같이 했던 총리 중에 가장 좋아하는 총리로 해롤드 윌슨을 꼽았다.
1966년 웨일스 에버판에서 탄광이 붕괴하며 산사태가 일어났다. 무너진 산더미가 학교와 마을을 덮쳐서 아이들 116명과 어른 28명이 목숨을 잃었다. 총리는 여왕에게 현장에 가서 주민을 위로해 줄 것을 부탁했다. 여왕은 가려하지 않았다.
여왕: 내가 정확히 뭘 하길 바라는 거죠?
총리: 글쎄요. 사람들을 위로하셔야죠.
여왕: 나보고 연기를 하라는 겁니까? 왕은 그럴 수 없어요.
총리: 누가 연기하라고 말했습니까? 사람들을 위로하라고 말했습니다.
Q: What precisely would you have me do?
PM: Well, comfort people.
Q: Put on a show? The Crown doesn’t do that.
PM: I didn’t say put on a show. I said comfort people.
여왕은 총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에 여왕의 남편인 필립이 현장을 방문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나 사건 현장을 방문한 여왕은 ‘주민을 위로하라’는 말의 참뜻을 깨달았다. 여왕은 에버판 현장을 바로 찾지 않은 것을 68년의 재임기간 중에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 꼽았다.
유럽에서 코로나는 불가항력의 재해처럼 느껴진다. 특히 노인들에게는 그렇다. 93세의 여왕이 누구를 위로할 수 있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4932명의 사망자 가족과 실직 위기에 처한 많은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TV 앞에 나왔다. 많은 국민들이 여왕의 TV 등장을 반겼다. 어려움을 함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역사적 순간을 통과한다는 감회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위로의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도 있다.
COMFORT PEOPLE은 여왕과 왕실의 존재 이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