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업
1970년대 우리는 한 해에 100만 명이 태어났다. 1930년대 우리 아버지들은 50만 명씩 태어났지만, 유아 사망률이 높았고, 전쟁도 겪었다. 2010년대 우리 자식들은 30만 명씩 태어나고 있다. 100만 명의 우리는 빈곤한 노인을 탑골공원으로 내몰고 있고, 아이들을 질 낮은 보육시설에 맡기고 있다. 100만 명의 우리가 50만 명의 아버지와 30만 명의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는데, 후에 30만 명의 아이들은 100만 명의 노인과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돌 볼 수 있을까?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Boomer Remover라고 한다는데, 그게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70년대 태어난 백만 명의 한 명으로 40년 후에 있을 바이러스 사태를 상상해 보기 때문이다. 우린 아무런 동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는 초기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사망자가 급증했다. 상대적으로 따뜻하여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는 유럽의 노인들이 많다. 그중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있다. 면역력이 약한 노년층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뿐이다.
GlaxoSmithKline의 제품 중에 Chloroquine(클로러퀸) 계열 의약품이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 치료에 쓰일 수 있는지가 테스트되고 있다.
글락쏘 스미쓰 클라인은 런던에 본사를 둔 제약회사다. 런던 시내에서 히드로 공항으로 가다 보면 커튼월로 시공된 우람한 건물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거기에 큼지막한 글씨로 GSK라고 쓰여 있다. GSK는 시가총액 112조 원, 매출액 51조 원, 영업이익 10조 원의 초대형 제약회사다. 미국에 기반을 둔 화이자(시가총액 200조 원, 매출액 61조 원, 영업이익 19조 원)에 미치지 못하지만, 어마어마한 규모의 다국적 제약회사다.
대학시절 가지게 되었던 이미지 중에 나중에 크게 바뀐 것이 몇 개 있다. 다국적 기업이 대표적이다. 다국적 기업은 군산 복합체, 제국주의라는 단어와 묘하게 어울리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똬리를 틀었다. 그중에도 음모론의 단골손님인 다국적 제약회사는 거악 중의 최고봉이었다.
깨달음의 순간은 늦게 찾아왔다. 2008년 의료 후진국에서 여러 가지 잡균에 감염된 적이 있었다. 그곳 의사가 각각의 균에 대한 치료법을 제시해 주었는데, 주사를 수 차례 맞아야 했고, 여러 가지 항생제를 일주일 이상 먹어야 했다. 그게 그럴 일인가 싶어서 한국에 있는 의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럴 거 없는데, 그냥 화이자에서 나오는 지트로맥스만 한 번에 네 알 먹으면 끝날 거 같은데!’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배달받은 지트로맥스는 포장도 이뻤고, 포장지와 알약에 새겨져 있던 화이자 마크는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땅 밑에서 하늘로 치솟아 올랐고, 덕분에 군산 복합체나 제국주의라는 단어까지 좋아질 지경이었다.
말라리아 백신을 처음 개발한 회사가 GSK다.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것도 GSK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우리 삶에 기여한 것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많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연구진들이 밤낮없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우고 있을 다국적 제약회사의 연구진들에게 큰 응원을 보낸다.
바이러스의 문제는 제약회사가 해결할 것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인 노령화를 바이러스가 해결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그게 해결되면 다국적 제약회사를 음모론의 정점으로 생각해 왔던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제약회사가 자신의 역할을 할수록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인 노령화는 심화될 것이다. 코로나의 창궐이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보여주었다면, 코로나의 퇴치는 우리 사회가 우선순위로 둬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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