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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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축구에 대한 편견과 혐오, 손흥민과 윤여정
손흥민은 런던에서 사랑받는 축구 선수다. 요즘은 개인 컨디션도 별로고, 팀 성적도 좋지 못하다. 어제는 맨유와의 경기에서는 상대의 가격에 넘어졌고, 맨유팬으로부터 인종 차별도 받았다. 경기 흐름도 좋지 못했고, 결과도 나빴다. 손흥민과 토트넘의 침체가 확연하다.
영국에서 축구는 여전히 클래스가 낮은 스포츠라는 편견이 있다.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기 전인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영국의 중산층은 축구장에 잘 가지 않았다고 한다. 거친 언어를 주고받고, 관중 간에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일도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축구는 그에 비하면 양반이다. 축구장에는 원정 응원석이 있고, 홈 응원석이 있는데, 원정 응원석 표는 구하기도 어렵고, 더 비싸다. 그래서 원정팀 응원자 중에 일부는 홈 응원석에서 구경한다. 그게 생각보다 티가 잘난다. 지금의 축구는 점잖아져서 홈팀 응원석에 앉아 있는 한두 명의 원정팀 팬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원정팀 응원석을 향해서는 과감하게 F를 날리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인종 차별적 욕설도 종종 주고받는다.
영국 축구팀의 로고를 보면, 공산당 마크처럼 해머나 곡괭이 같은 것이 많이 보인다. 축구가 노동자 계급의 스포츠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 중산층은 축구에 거부감을 여전히 드러내기도 한다.
영국인이 진정한 스포츠라고 치켜세우는 크리켓의 경우 정직한 경기 운영이 생명이다. 스윙을 하다가 공이 베트에 맞지 않고 손에 맞으면 아웃이다. 심판이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타석의 선수는 자신의 손에 맞았는지 아닌지를 안다. 심판의 선언이 없어도 선수 스스로 아웃을 선언하고 퇴장하는 경기가 크리켓이다. 요즘 크리켓 국제 경기에서는 간혹 자신이 아웃임을 알지만, 심판의 콜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면 선수는 나중에라도 비난을 받는다.
축구에서는 반칙을 당하지 않았는데 다이빙을 한다거나, 시간을 끌기 위해 침대 축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축구 경기에서 매분마다 발생하는 일 중에 하나는 공이 자신의 발에 맞고 나간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손을 들어 자신의 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장면을 볼 때면 축구는 과연 무슨 스포츠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야구가 베이스를 훔친다고 신사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엄밀하게는 베이스를 훔치는 것이 아니고 공보다 빨리 달리는 규칙일 뿐이다. 스트라이크에 대한 심판의 자의성이 있지만, 야구선수는 비교적 심판에게 잘 승복하는 편이다.
축구와 비슷하지만 더 과격한 운동인 럭비가 있다. 럭비의 경우 야수성을 컨트롤하는 것을 중요한 미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선수 간의 충돌은 축구보다 훨씬 덜하다. 럭비에서는 심판에게 항의하는 일도 거의 없다. 선수가 심판에 항의하는 것이 가장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간주되며, 자동적으로 10야드 페널티가 주어진다.
프로축구의 중요한 경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마추어 축구에서도 비신사적인 일이 많이 일어난다. 어릴적 동네 축구 경기에서 옐로카드를 받은 선수가 심판에게 심한 욕을 하는 장면을 본 적도 있고, 심판을 때리려고 하는 장면을 직접 본 적도 있다. 상대팀 선수조차도 심판을 보호해 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마추어 축구에서는 그런 비신자적인 행동에 대한 어떠한 실효적인 제재가 없다.
축구에서 VAR가 도입되어 축구의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주장도 있지만, VAR를 확대해서 도입하는 것이 축구의 선진화, 축구의 신사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골 상황, 퇴장 상황에서만 VAR가 쓰이고 있지만, 보통의 반칙이나 골라인 아웃 상황에서도 즉각적으로 VAR를 확인하는 시스템으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도입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승리를 위해 비신사적인 행위를 일삼는 축구 선수들의 태도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
어제 맨유의 에디손 카바니는 자신의 반칙으로 선수가 넘어졌는데, 그 선수에게 심한 욕설과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부 선수들의 비정상적 행동을 보다 보면, 인종차별이라는 것이 애교로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다. 축구에서 인종차별만 이야기하지 축구 선수들이 보이는 일상적인 비신사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이 좀처럼 없다.
오스카 와일드가 럭비와 축구를 비교해서 한 말에 아직도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그것은 현대 축구가 아직도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럭비는 야만인들을 위해 신사들이 벌이는 게임이며, 축구는 신사들을 위해 야만인들이 벌이는 게임이다.(Rugby is a game for Barbarians played by Gentlemen. Football Is a game For Gentlemen played by Barbarians.)”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영국인의 snobbish(신사인척하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윤여정의 BAFTA 수상소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