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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pr 21. 2021

내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꺼렸던 세가지 이유

Londo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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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내가 백신 접종을 꺼렸던 세가지 이유

  

  

한달 반전에 코로나 백신 접종을 예약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마침내 내 순서가 왔구나!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메시지를 유심히 본 후에 무시했다. 이틀 후에 다시 한번 메시지가 왔다. 예약해 주면 좋겠어! 이번에는 눈길도 제대로 주지않았다. 그리고 한달 후에 온 세번째 메세지는 두번째와 동일한 것이었다. 이쯤 되면 삼고초려다. 더 이상 거부할 명분이 없다.


내가 백신 접종을 꺼렸거나 시기를 늦추려고 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나는 백신이 아니라 주사바늘을 무섭게 생각한다. 어릴 적 예방접종이 있을 때면, 일주일 전부터 걱정이 되어 시름시름 앓았다. 커서는 한번도 자청해서 주사를 맞아 본 적이 없다.


둘째, 나는 백신을 일찍 맞고 그걸 SNS에 인증함으로서 내 나이가 많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이 백신을 접종할 때 그들 무리에 끼어 맞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 의외로 이런게 중요해진다.


셋째, 나는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굳이 서둘러 백신을 맞아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백신은 어디서나 맞을 수 있다. 동네 약국, 자연사 박물관, 인근의 스포츠 클럽, 동네 축구 클럽 등등. 나는 조금 멀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크리스탈 팰리스 축구 클럽에 가서 맞아 보기로 했다.



내 앞에는 열명 정도 사람이 있었고, 연로한 분들도 있었지만,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내 뒤로 다섯 명이 더 왔다. 나이가 든 분들은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백신 센터에 등장했고, 젊은 분들은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나눠줬고, 예약번호를 확인했다. 안으로 들어가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하고 다시 안내되었다. 세번째 대면자는 지난 한달간 코로나 확진을 받은 적이 있는지, 증상을 느낀 적이 있는지, 건강상의 문제는 없는지, 혈전과 관련한 병력이 있는지 물어 보았다. 사람에 따라 약한 감기 증상을 느끼는 경우가 있고, 이틀 정도 두통 증상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말해주었고, 4일째에도 두통이 가시지 않으면 주치의(GP)를 찾으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맞는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라고 했다.


나는 다행으로 생각했다. 백신을 신뢰하지만, 내 몸에 상대적으로 신기술이 들어 오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칸막이가 처진 접종대로 안내되었고, 그곳에 노트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내 이름을 확인한 후에 접종을 받았다는 카드를 전달해 주었고, 나는 의자에 앉아 접종을 기다렸다.


이제는 빼박이다. 간호사가 주사기를 들고 ‘혹시 질문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마지막으로 힘을 내어 물었다. 나는 항체를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맞아야 하는가? 항체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 중에 없는 사람이 많았으며,  항체가 있는 사람의 경우 백신 효과가 더 뚜렷하다. 항체가 있는 경우라면 1차 접종이 사실상 2차 접종이 되는 것이어서 그렇다면 2차 접종은 맞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라고 묻고 싶었으나, 그리되면 백신이 아니라 주사 자체를 겁내는 것이 들통날까봐 참았다.


드디어 주사를 놓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처다보지 않았다. 뭔가로 찌른 느낌을 막연하게나마 느꼈지만, 주사 바늘을 빼는 순간은 알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끝났는데!’라고 간호사가 말해주었지만 엄밀하게는 주사기를 찌른 것조차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백신의 발전은 잘 알고 있었지만, 주사기의 발전을 내가 간과하고 있었다. 에드워드 제너가 백신을 만든 이후 백신의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인류는 발병 이후 일년이 지나지도 않아 백신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비하면 주사기의 발전이야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나는 왜 주사기의 발전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15 동안 백신 센터 내부나 자신의 차에서 기다린 후에 아무 증상이 없으면 집으로 가라고 말해 주었다. 차에 앉아서 핸드폰도 만지지 않고 멍하니 축구장의 조명 타워를 보고 있었다. 크리스탈 팰리스 축구팀은 유럽 슈퍼리그에 대해 분노 하고 있을 것이다. 15분이 지났고 1분만  기다려 보고자 했다. 그런데 나보다 2 정도 늦게 접종한  영국 아저씨가 먼저 차를 타고 출발했다.  아저씨는 14 정도 기다 같았다. 16 동안 기다린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이런  같은, 아니 물보다도  약해 보이는 소량의 백신을 맞게 되면, 중증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95% 감소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개발자에게 경외심이 생겼다.


집에 와서 와이프에게 말했다. 나는 백신을 맞았으니 앞으로 이틀간 집에서  쉬어야 한다. 누워서 최대한  몸에 나타나는 증상에 대해 민감해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20시간이 지났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특이 사항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걸 무서워했다니? 이제는 2 접종이 기다려질 정도다. 백신 센터에 오는 노인 분들의 표정이 밝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들도 2 접종을 기쁘게 기다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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