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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n 09. 2021

영국에 The 있다

London Life 20

London Life 2.0

- (33) 영국에 THE 있다.

  

  

# 첫째 장면, 손흥민의 인터뷰


어느 날 손흥민의 인터뷰를 영국 방송에서 봤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영국인 페친에게 그 인터뷰의 영어 실수를 10개만 지적해 달라고 부탁했다. 첫번째로 지적된 것이, “대부분의 아시아인이 하는 실수인데, the와 a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였다. “손흥민은 영어를 아주 잘한다”는 칭찬을 빠트리지는 않았다. 나도 부정관사인 a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지만, 정관사인 the는 더더욱 잘 사용하지 못한다.


# 둘째 장면, 대학교 첫 수업


대학교  전공 수업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교재로 선택된 책의 정확한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An Introduction of Contemporary History’였던  같다. 교수님이 던진 수업  질문은 ‘부정관사가 들어가는 an introduction정관사가 들어가는 the introduction무슨 차이가 있느냐?’ 것이었다. 답을 모르고 있던 나는 ‘역시 서울대학교 수업은 수준이 다르구만! 이렇게 훌륭한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하다니!’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성문종합영어 정도는 외우고 있었고, the 용례에 관한 시험문제를 어렵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런 고급(?) 질문이 있을 줄은 몰랐다. 강남 출신의 친구가 손을 번쩍 들더니,  질문에 선생님이 원하는 답을 말했다. 나를 포함한  명이  놈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 제는 넘사벽이군!’



# 셋째 장면, 펍의 발견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한 둘째는 영어를 문법적으로 잘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 아이가 길을 가다 발견한 것은 영국의 Pub에는 항상 the가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Greyhound가 아니고, The Greyhoud며, 프린스 알프레드가 아니고 The Prince Alfred다. 어제 동네 이웃과 골프를 치러가다가 둘째 아이의 질문이 궁금하여, 왜 펍의 이름에는 The가 붙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의 설명은 “꼭 그렇지는 않다. 안 붙는 경우도 있다. 우리 동네 Wood House있잖아. 그 펍에는 The가 붙지 않잖아!” 나는 생각했다. ‘그런가? 영국에 꼭 그런 것은 많지 않으니까! 그렇지! 나도 Wood House에서 The를 본 것 같지는 않군!’


# 넷째 장면, The의 발견


동네를 산책하다가 갑자기 어제의 대화가 생각나서 Wood House에 가서 맥주를 하고 싶어졌다. 런던 라이프에는 공원 피크닉, 개와의 산책, 자전거 타기, 동네 스포츠나 사교 클럽 활동, 미술관이나 박물관 방문 등이 있겠지만, 그 중에 빠지면 서운한 것이 동네 pub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별 일 없이 들러서 마시는 맥주나 음료수! 오늘 따라 건물의 외벽에 쓰인 Wood House라는 글자가 더 확연해 보인다. 그러나 건물 외벽 글씨를 제외하고 모든 곳에는 어김없이 The Wood House라고 표기되어 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에 흘려 쓰인 The라는 글씨를 유심히 본다. 어제 골프 클럽에서 샨디(Shandy, 맥주에 레몬에이드를 탄 것, 우리식으로 맥주+사이다 같은 것)을 많이 마신 것을 기억하고, 맥주 대신에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 마지막 장면, The World’s End


길을 가다가 만나는 가장 멋진 이름의 펍은 첼시에 있는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길거리에서 만난 친구에게 ‘야! 이따가 세상의 끝에서 만나!’라고 말하면, 친구가 당황하지 않겠는가? ‘세상에 끝은 다양한데, 어느 끝에서 만나자고? 내가 너랑 꼭 세상의 끝에서 만나야 하는거야?’ 등등의 의문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럴 때 The가 들어가서 세상의 끝이라는 펍에서 만나자는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The가 들어간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The Red Lion이라는 펍이 영국에 759개고, The Royal Oak가 626개인데, 이럴 때는 어느 The에서 만나자는 것인가? 세상의 끝도 아마 100개는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끝이라는 말이 영국에 더 잘 어울리는 이유는 줄리어스 시저가 영국을 정복하러 왔을 때, 영국을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세상의 끝은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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