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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n 12. 2021

우리 동네 미술관과 세상의 변화

London Life

London Life 2.0

– (34) 우리 동네 미술관과 세상의 변화

  

  

동네에 미술관이 있으면 자주 갈 수 있으니 좋다. 그림을 보는 눈도 덩달아 좋아지겠지! 우리 동네에는 덜위치 픽처 갤러리(Dulwich Picture Gallery)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오랜만에 동네 미술관에 가봤다. 작품 배치가 달라져 있었다. 그림을 훔쳐가려는 시도가 있었기에 보안을 강화하면서 미술품 배치가 바뀌었단다.


우리 동네 미술관에는 동네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귀족의 미술품 보관소가 아니고, 처음부터 대중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만든 영국 최초의 공공 미술관이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존 소안(John Soane)을 초빙하여, 지붕에서 자연 채광이 되도록 건물을 설계했다. 이것 또한 세계 최초다. 영국박물관 메인 로비가 노만 포스터에 의해 자연 채광으로 변모된 것도 우리 동네 갤러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대중에게 공개된 최초의 미술관이다 보니 윌리엄 터너, 빈센트 반 고흐 같은 화가가 그림을 공부하는 시절에 우리 동네 미술관에 자주 왔었다. 그들도 오늘의 나처럼, ‘성찬식’과 ‘꽃 소녀’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지 않았을까? 렘브란트, 반 다이크, 윌리엄 호가쓰를 비롯한 유명 화가의 작품 앞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을까?


소장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렘브란트의 ‘제이콥 드 게인 3세의 초상화’다.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한 미술품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네 번을 도난당했는데, 매번 다시 찾아와 지금의 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이 이야기를 듣던 여섯 살 막내는 ‘미술품 도난이라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이지!’라고 말해, 작품 재배치의 이유를 설명해 주던 미술관 직원을 놀라게 했다. 아이가 ‘보물찾기’ 만화에서 본 모양이다. 보스턴에 있는 미술 박물관은 1990년에 렘브란트의 ‘갈릴리 호수의 폭풍우’, ‘검은 옷을 입은 신사와 숙녀’를 포함하여 총 13점을 도난당했고, 지금까지 한 점도 찾지 못했다. 아이의 아는 체에 감명받은 동반 관람자가 아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이 도난된 그림이 있던 곳에 빈 액자를 그대로 놔두었어. 그걸 안타깝게 생각한 젊은 프로그래머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지! 핸드폰을 가져다 대면, 빈 액자에 원래 그림이 나타나도록 가상현실을 만들어 놓은 거야!”

“포켓몬스터처럼요?”

“그렇지. 그게 SNS에 퍼지면서 미술관에 오지 않던 젊은 친구들이 미술관을 찾아 모바일폰을 들이대기 시작한 거야. 자초지종을 알지 못한 박물관은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드가, 마네의 작품을 몹시 그리워한다고 생각했지. 사실 젊은이들은 AR/VR 기술이 미술과 결합한 것을 신기하게 여겼던 거지.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박물관이 취한 조치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는 질문의 의도를 알지 못했다. 이런 때는 내가 나서야 했다.

“그 프로그래머에게 상을 주었나요?”

“아니예요. 반대로 사진을 찍지 못하게 금지시켰어요. 당시만해도 AR/VR이 보수적인 미술 박물관에 등장할 여지가 없었죠. 그런 사진이 유통되면, 잃어 버린 원작 대신에 모작을 걸어 놓았다는 오해가 생길 것이라고 걱정했을 거예요.”

“지금은 어떻죠?”

“지금요? 허용하고 있을 겁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보수적인 미술 박물관도 AR/VR을 새로운 아트로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죠. 테크를 예술과 어떻게 접목시키느냐? 그것을 어떻게 잘 소개하느냐? 그런 것이 미술 박물관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죠. 도난당한 그림으로만 구성해 놓은 가상 박물관도 있을 걸요.”



아이는 이미 저만치 가서 다른 그림을 보고 있었다. ‘예알못’인 나는 동네 미술관에서 오늘도 큰 깨달음을 얻었다. 쇼펜하우어의 말이 생각났다.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AI(인공지능), NFT(대체불가토큰), 블록체인 등은 조롱과 반대의 단계를 넘어서 예술계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인지, 세상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은 분명히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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