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우리 Jun 22. 2021

운전도 못하는데 끼어들기까지 하라고?

London Life

운전도 못하는데 끼어들기까지 해야 하는가?

새우튀김 세 개 중에 하나는 누구의 부담이어야 하는가?

  

  

글을 100 정도 쓰면, 와이프에게 칭찬받는 글은   정도되는  같다. 작년 중에 내게도 마음에 들었고, 와이프에게 칭찬도 받았던 것은 ‘헛똑똑이는 차이점에 주목한다였다.


각 나라의 코로나 대응을 비교하면서 스스로 범했던 오류를 반성하는 글이었다. 헛똑똑이는 비교를 선호하는데, 비교하게 되면 차이점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헛똑똑이는 차이점에 주목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본질에 주목한다. 페북에서 현명한 사람의 포스팅을 보고, 본질에 접근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얼마 전에 콘월에 다녀왔다. G7 정상회담의 수행자로 참여한 것은 아니며, 취재자나 통역자로 간 것도 아니다. 아이들 방학이라 그냥 가본 것이다. 콘월까지 가는 길은 6차선 대로였다가 4차선 도로였다가를 반복했다. 교통 혼잡을 피하기 위해 구글이 알려준 우회 도로 중에는 도로 폭이 나오지 않아 차선 그리기를 포기한 곳도 있었다. 길은 좁을수록 아름다웠다.


운전을 하면서,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었던 헛똑똑이 기질이 나왔다. 고속화 도로에서 편도 3차선이 2차선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나라는 바깥 차선이 사라진다. 그런데 영국은 대부분의 경우에 가장 안쪽 차선이 사라진다. 헛똑똑이 치고는 대단한 발견 아닌가?



가장 빨리 달리는 차가 안쪽 차선을 달린다. 중간 정도의 운전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주로 가운데 차선으로 주행한다. 운전에 자신이 없고 서행이 몸에 밴 와이프는 항상 바깥 차선을 선택한다.


이게 꽤나 불공정하다. 운전이 서툰 사람이 선택하는 바깥 차선에 화물차가 주로 다니기에 전방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때가 많다. 바깥 차선에는 로드 킬 당한 동물이 더 많고, 노면 상태도 더 불량하다. 길이 합류할 때는 공격적인 끼어들기를 당하기도 한다. 가뜩이나 불편한 바깥 차선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차선 자체가 간혹 없어진다는 점이다. 3차선이 2차선이 되거나 2차선이 1차선이 될 때는 바깥 차선이 없어진다. 그럴 경우 안쪽 차선으로 끼어들어야 한다. 운전도 못하는데 끼어들기까지 하라고?


안쪽 차선은 더 빠르게 달린다. 안쪽 주행자가 바깥쪽 주행자와 비교했을 때, 더 능숙한 운전사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차선이 하나 없어질 때, 능숙한 운전자의 차선이 없어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서투른 운전자의 차선이 없어지는 것이 좋을까? 빨리 달리는 차가 천천히 달리는 차선에 끼어드는 것이 천천히 달리는 차가 빨리 달리는 차선에 끼어드는 것보다 쉽지 않을까?



영국 고속도로의 차선 없어짐이 운전 능숙 여부를 고려한 것인지, 교통 흐름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것인지, 안전을 확보하려는 아이디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일 안쪽 차선이 없어지는 것이 안전하고 교통 흐름상 효율적이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나라가 그 제도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게 운전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한다면, 이러한 교통문화가 영국사회의 다른 분야에도 접목되어 있는지 살펴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고속도로 차선 문제는 효율성, 안전 또는 약자 배려가 아닌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다 차치하더라도.


인간 사회에 공동체 의식이 있다면, 능숙한 사람이 서툰 사람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이 맞이 않을까? 혜택이 사라진다면, 강자의 혜택이 약자의 혜택보다 먼저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갑질을 하는 사람이 갑질을 당하는 사람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갑질이라는 단어도 있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새우튀김 한 개를 하루가 지나서 반품 요청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쿠팡 이츠까지 동원된 클레임에 충격을 받은 동네 분식집 사장이 쓰러져 사망했다. 하루가 지나 음식의 색을 탓하는 고객의 존재는 공동체 의식의 문제다. 그러한 클레임을 걸러내지 못하고 분식집에 전달하는 것은 기술과 철학의 문제다. 쿠팡 이츠에 제대로 된 AI가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객에게 환불해 주었을 것이다. 만일 그런 일이 한번 더 발생한다면, 그 고객의 주문을 다시는 접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새우튀김 세 개 중에 하나가 문제라는 억지가 등장했다면, 문제의 새우튀김 하나는 누구의 책임이어야 하는가? 세 개의 차선 중에 바깥 차선 하나가 예고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지구촌 곳곳에서 자주 발생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안쪽 차선도 예고없이 사라져서는 곤란하다.

  

  

London Life 2.0 – (36)


(아래 표지판  때는 영국 차는 우측 핸들, 좌측 통행이란 것을 감안해서 봐야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표지가 책을 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