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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ug 04. 2021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

London Life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

London Life 2.0 – (48)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후와 시간대가 비슷한 인접국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일본과 중국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것도 예상된 일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메달 수는 이번에 조금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여러 종목에서 큰 감동이 있고, 재미가 있으니, 그걸로 기쁨이 넘친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것이 나라의 클래스를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를 우승했다고 하여, 그 나라를 우러러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수영선수가 100미터 자유형에서 4위를 했다고 해서 한국이 수영에서 4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우리나라 국력이 4위가 되거나 한국인의 자질이 4위가 되겠는가?


재즈가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이유로 아프리카를 사랑하거나 아프리카 음악에 경외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듯이 BTS가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세계 음악 팬이 우리나라를 우러러보는 것은 아니다. 내 클래스가 높아지지 않는 이상 우리의 클래스는 절대 높아지지 않는다.


내가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은수미 성남시장이 펜싱 금메달리스트에게 7천만 원의 돈을 전달하는 장면이다. 성남시는 운동부를 운용하는 것 같고, 포상금을 지불하는 것 같다. 성남시라는 국가기관이 납세자의 돈을 이렇게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성남시는 충분한 생활체육 시설을 시내에 갖추고 있겠지만, 국가기관이 운동의 주체이며 포상의 주체인 것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펜싱이라는 비인기 종목은 시장에서 운영될 수 없는 시장 실패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는가?


올림픽은 이념상 아마추어 선수들의 경연장이었고,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순수 아마추어 선수들이 출전했다. 영국 올림픽 선수들은 동네에서 운동 꽤나 하는 사람들이 선발되어 올림픽에 나갔고, 선수들 대부분은 올림픽에 나가는 것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했다.



간혹 특출한 아마추어가 메달을 따기도 했고, 그의 직업은 의사나 선생님이나 소방대원이었다. 그들은 직업선수가 아니었고 순수 아마추어였다. 순수 아마추어가 무늬만 아마추어인 선수를 이기기는 어렵다.


영국은 1996년 아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하나 따서 메달 순위에서 36위를 했다. 금메달을 3개 딴 카자흐스탄, 2개를 딴 에티오피아와 북한보다 순위가 낮은 36였다. 아무리 순수 아마추어가 참여했다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전국적으로 십오만 개의 스포츠 클럽을 가지고 있는 생활체육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스포츠 게임 대부분의 종주국을 자부하던 영국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영국 스포츠사에 획기적인 결정이 1997년에 내려졌다. 1994년에 시작한 국민복권의 수익금 일부를 엘리트 스포츠 선수를 지원하는 데에 사용하기로 했다. 전체 판매액의 25%를 교육, 환경, 자선, 예술, 역사 보전 등의 ‘선한 목적(good causes)’에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선한 목적에 엘리트 스포츠 선수 지원을 추가한 것이다. 올림픽 메달권에 근접한 아마추어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


복권 팔면서 이런 유치한 광고문구도 추가했다. “여러분이 복권을 조금만 긁으면서 놀면, 우리 운동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돼요!”


평생 생활체육에 단련된 아마추어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금전적 지원은 금방 효과를 냈다. 1996년 아틀랜타 참사 이후 20년 만인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영국은 거의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땄다. 금메달 27개, 은메달 23개, 동메달 17개를 따서 중국, 러시아, 독일을 멀찍이 따돌리고 미국에 이어 종합 2위를 했다.


생활체육의 기반 위에 개인들에게 복권을 더 긁도록 만들어서 엘리트 체육을 부흥시킨 것이다. 세금으로 체육부서를 운영하고 포상금을 주는 것과 국민들에게 복권을 긁게 하여 운동선수를 후원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일 수 있다. 왼 주머니에서 나가나, 오른 주머니에서 나가나다.


그러나 왼 주머니는 왼 주머니고 오른 주머니는 오른 주머니다. 안 주머니는 안 주머니고 바깥 주머니는 바깥 주머니다. 내가 낸 재산세와 양도소득세로 펜싱 선수를 후원하는 것은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국가의 과도한 관여’라고 생각한다.


‘너희가 산 복권 판매 금액의 일부로 시장의 실패를 만회해 볼 테니, 복권 살 사람은 많이 사, 고마워!’ 이것이 그나마 봐줄 수 있는 엘리트 스포츠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성남시를 거처간 많은 시장님들은 성남시 운동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눈엔 그거  이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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