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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ug 24. 2021

박인비에게서 배워야 한다

London Life

박인비에게서 배워야 한다.

 

 

해외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에 하나는 ‘한국 여자 골프는 왜 강한가?’다. 내게 질문한 모든 외국인은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나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속 시원한 답을 들려줄 수 있는가?


한국 선수의 활약을 그리 반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나의 답도 꽤 신나지는 않는다. 브리티시 여자 오픈을 중개방송한 영국의 SKY 스포츠는 마지막날 조지아 홀(Georgia Hall)과 같은 조에서 플레이 한 김세영 선수를 단 한번도 비춰주지 않았다. 조지아 홀에게는 카메라가 세대 정도 따라다녔는데도 말이다.


많이 듣는 질문은 아니지만, 내가 늘 가지는 의문도 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여자선수는 왜 갑작스럽게 리더보드에서 사라지는가?’ 여자골프를 주름잡을 것 같은 선수들이 갑작스럽게 난조를 겪고 다시는 정상급 선수로 돌아오지 못한다. 최나연, 리디아 고, 청야니, 펑샨샨, 전인지, 박성현 등 일일이 거명할 수도 없다. 항상 리더보드의 상단에 있던 선수들이 별 이유없이 리더보드의 하단으로 내려간 후에는 올라오지 못한다.


2년 전에 워본(Woburn)에서 개최된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서 본 고진영의 플레이는 견고했다. 테니스의 조코비치와 같은 무결점 플레이어였다. 고진영의 상승세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그녀는 어떤 한국 선수보다 늦게 LPGA 투어에 복귀했고, 복귀후에는 이전과 같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앞에서 거명했던 선수들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된다.


예외적인 경우가 박인비 선수다. 박인비는 전성기를 지나고 다시 일어나 올림픽에서 우승을 했고, 그 후에도 종종 리더보드의 상단을 장식한다. 박인비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저 선수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저 선수는 골프에 대한 자세가 좋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어제 경기를 52위로 마치고 연합통신 최윤정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림픽 직후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었지만, 카누스티(Carnoustie)엔 꼭 오고 싶었다. 나를 테스트하는 기분이었다. 링크스 코스를 좋아하지만 많이 혼난 것 같다. 그래도 즐기면서 경기했다.”



그녀는 왜 카누스티에 꼭 오고 싶었을까? 왜 카누스티에서 우승하고 싶었을까?


나는 매년 9월에 동네 아저씨들과 스코틀랜드 골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지난 해에 첫번째 행선지가 카누스티였다. 카누스티 이후에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코스(St Andrews Old Course), 로얄 더녹(Royal Dornoch), 트럼프 툰버리(Trump Turnberry)에서 골프를 치고 왔다.


올해 9월에도 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올해 정해진 행선지는 로얄 버크데일(Royal Birkdale), 로얄 트룬(Royal Troon), 뮤어필드(Muirfield), 카누스티와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코스다. 다른 것은 변해도 카누스티와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는 바뀌지 않는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의 의미는 누구나 알 것이다. 미국 골퍼의 80% 이상이 올드코스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골프가 시작된 곳이니 그 정도의 위상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카누스티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앞에서 열거한 다른 골프장에 비해서 코스 자체가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전형적인 링크스 코스와도 조금 차이가 있다. 링크스 코스는 나무가 없고 워터 헤저드가 거의 없는데, 카누스티에는 아름들이 나무가 있고, 실개천도 곳곳에 흐른다. 바람이 불면 공은 반드시 페어웨이 벙커와 실개천 사이를 전전하다가 덤블과 나무 속으로도 빠진다. 지난 해 9월에 플레이 할 때에 카누스티엔 강한 비와 바람이 불었고, 우리 모두는 골프가 싫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카누스티를 다시 가는가? 영국 사람들이 미국과 호주에 가서 골프협회를 만들었다. 그냥 영국인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카누스티 사람들이다. 그래서 카누스티는 자신도 골프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PGA 골프와 LPGA 골프의 고향은 오히려 세인트 앤드루스가 아니라 카누스티라고 주장한다.


골프는 근대 스포츠 중에 가장 역사가 오래된 스포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00년대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골프가 성행했다. 당시 잉글랜드와 전쟁 중이었는데 젊은이들이 활쏘기는 하지 않고, 들판에서 공만 치고 있었다. 골프는 전쟁에 크게 도움되는 기술이 아니지 않는가? 화살로 적장의 눈을 맞춘 인물은 동서고금에 여러 명이 있지만, 골프 공으로 적장의 눈을 맞췄다는 인물은 없지 않은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는 1457년에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아마도 그 후로 골프 금지령을 내린 지도자는 김영삼 대통령이 두번째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1502년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와 잉글랜드의 헨리 7세가 평화 협정을 맺게 되며, 평화의 징표로 제임스 4세와 마가릿 튜더(헨리 8세의 누나)가 결혼을 했고, 골프가 다시 허용되었다.


한동안 억눌렸던 골프 수요가 폭발하면서 카누스티에도 골프장이 생기고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제임스 4세도 골프를 쳤다. 이쯤 되면 다소 피곤하더라도 카누스티는 꼭 오고 싶었다는 박인비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링크스 골프장에서는 좋은 성적을 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완벽한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이상 링크스 골프를 거르려고 하는 한국 선수도 있을까?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 특히나 전성기를 향해 나가고 있는 선수들은 박인비에게 배워야 한다. 골프라는 것이 의미를 알고 쳐야, 골프에 대한 자세가 좋아진다. 골프를 대하는 자세가 좋아야 오랫동안 기량을 유지할  있다. 박인비에게 배워야 올림픽도 우승하고, 브리티시 오픈도 우승하며, 그랜드 슬램도 달성하고, 명예의 전당에도 입회된다. 그니까 카누스티에서 열리는 대회는 웬만하면 빠지면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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