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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Sep 28. 2021

나는 런던의 트럭 운전수!

London Life

물류 대란, 브렉시트, 코로나 바이러스, 전기세 인상과 시대의 변화

   

  

1. 어릴  등하교 길은 신작로였다. 신작로는 달구지나 자전거가 주로 다녔지만,  일으키며 버스가  시간에  대씩 다녔다. 버스 두대가 마주 지나면서 기사들은 서로 손을 들어 인사했는데,  모습이 먼지를 뒤집어쓰아이들에게는 참으로 멋지게 보였다. 그래서 커서, 버스 운전수가 되겠다고 생각한 친구도 있었다.


2. 직장 초년생일 때, 동아일보에 다니는 친구가 취재한다며 나를 찾아왔는데, 자기는 기자를 그만두면 택시기사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일이 재미있어 보인다고 했다. 제2의 직업이란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게 그 친구의 택시 운전수의 꿈은 신선하게 들렸다.


3. 내가 제2의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나는 가드너(gardener)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가드닝 잡지도 구독하며, 다른 집 가든도 자주 가보고, 어제는 첼시 플라워 쇼도 다녀왔다. 그러나 가드너는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센스도 있어야 하며, 미적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나이 들어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4. 런던에서 트럭 운전수가 되면 어떨까? 마침 영국에는 트럭 운전수 부족으로 물류 대란을 겪고 있다. HGV(Heavy Goods Vehicle) 운전수가 구조적으로 10만 명 정도 부족하다고 한다. 그중에 가장 위험군에 속하는 오일 탱크로리 운전수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그래서 휘발유가 주유소에 제때 착하지 못하고 있다.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 앞은 차량으로 북새통이다. 좁은 런던의 도로는 주유소에 들어가기 위해 늘어선 차향으로 심한 교통체증까지 유발되고 있다.



5. HGV 운전수는 얼마를 받을까? 3만 파운드(4천5백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던 운전수의 급여가 최근에는 5만 파운드(7천5백만 원)까지 상승을 했다. 그 정도면 제2의 직업으로 적당하지 않을까? 집에서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보다는 5만 파운드를 받으면서 유럽 전역과 영국 전역을 여행하고 다니면 좋지 않을까? 이문세와 이선희 노래를 크게 틀고 다니면 신나지 않을까?


6. HGV 운전수는 나이 들어도 할 수 있을까? 2021년 현재 영국의 대형 트럭 운전수 중의 44%가 50세에서 64세 사이다. 65세 이상도 4%나 된다. HGV계의 S클래스라고 불리는 볼보 트럭을 배정받을 경우 차 안의 편의시설도 아주 좋아서, 먹고 자는데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7. 면허를 따는 것은 쉬운가? 일단 한국 면허를 영국 면허로 바꿔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다. 그 기초 위에 HGV 면허를 추가로 따야 한다. 신체검사를 거친 후에 4단계에 걸친 필기와 실기 시험을 치른다. 보통은 3개월이 걸리고, 코로나 때문에 지난해와 올해는 신규 시험 일정을 잡는 것이 어려워 신규인력 공급이 더욱 차질을 빚게 되었다. 비용은 3천 파운드에서 5천 파운드까지 들며, 7천 명이 시험을 보면 4천 명 정도만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매 5년마다 35 시간 교육을 이수해야 HGV 면허가 Yuji된다.


8. 일은 어려운가? 런던의 시내 길은 좁고, 차량 통행을 불편하게 만든 곳이 많아서 운전이 마치 장애물 경기와 같다. 중형 세단이나 SUV만 돼도 운전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Volvo XC90이나 벤츠 S클래스 같은 차가 통과하기 어려운 길도 많다. 그런 런던의 길을 HGV를 몰고 다닌다는 것은 사실 신기에 가깝다. 시골길도 좁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운전 스트레스는 매우 클 것이다.


9. 왜 갑자기 HGV 기사가 영국에 부족해졌는가? HGV 운전은 전형적인 3D 업종이어서 유럽 전역에 부족 현상이 있다. 기사 부족 현상이 브렉시트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다. 동유럽 운전수 중에 2만 명이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들을 다시 부르기 위해 급여를 66%나 올려주고, 임시 특별 비자를 발급하고 있지만, 그러한 절차에는 시간이 걸린다.



10. 당장 내일 주유소에 기름을 실어 나를 탱크로리를 누가 운전할 것인가? 영국 정부는 군인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에 영국에서 탱크로리 기사가 전면 파업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 시민들은 말과 당나귀를 타고 다녔고, 결국은 군인들이 탱크로리를 몰아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면서 파업을 일단락시켰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탱크로리가 예전보다 커졌고, 작동이 복잡해졌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군용 트럭 몰던 군인이 갑자기 대형 탱크로리를 몰 수 있을까? 지금은 1953년이 아닌데.


11. 진짜 브렉시트 때문인가? 본질적인 원인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운전수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은 브렉시트로 인한 동유럽 운전수의 귀국이 아니라 자국 운전수의 퇴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돈보다 건강을, 일보다 가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퇴직한 HGV 운전수들은 웬만한 급여 인상에는 다시 일터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다. 66%가 아니라 77% 인상되면 혹시 일 년 더 일해보려고 할까?



12. 산업 전반의 변화도 하나의 원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배달 수요가 급증했고, 운전 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Ocado, Amazon 같은 배달 전문업체와 UPS와 같은 우편배달 업체가 좋은 조건으로 인력을 HGV 시장에서 빼앗아 가고 있다. 배달업체에서 일할 경우에는 집 근처에서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HGV 운전수는 영국, 아일랜드, 유럽 일대를 돌아다니느라 일주일 넘게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때도 많다.


13.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일주일에 120시간도 일할 수 있는 배달의 민족이 아닌가? 나는 런던의 트럭 운전수가 될 것인가?


14. 이번 사태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주유소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운전자는 그 옆을 유유히 달리고 있는 테슬라를 보면서 어얼리 어뎁터가 되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며 끊었던 담배를 한 대 베어 물었을 것이다. 주요소에서 담배를? 그러나 괜찮다. 주요소까지는 아직도 멀기 때문이다.


15. 그러나 문제는 전기도 부족하다면서? 그렇다. 유럽 전역이 현재 전기세 인상 압박을 겪고 있다. 2030년이면 해상 풍력 발전으로만 차량 충전을 포함한 모든 가정용 전기를 충당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던 영국 정부는 뜻하지 않게 바람이 적게 부는 사태에 직면했다. 바람이 적게 부는 환경에서 해상풍력만으로 가정용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해상풍력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바람이 정상적으로 불 때는 버려지는 전기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해상풍력 시설을 더 늘리면 남는 전기로는 비트코인을 채굴할 것인가? 버리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비트코인은 전기를 저장하는 가장 효율적인 배터리가 될 것인가?



16. 바람이 아주 안 불면 어떻게 되는가? 아주 안 불 수야 있겠는가마는 보수적인 예상보다 아주 많이 훨씬 적게 부는 상황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라는 중요한 이슈로 인해 석유, 석탄, 가스로의 회귀가 어렵다고 하면, 원자력에 대한 의존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을까?


17. 전기는 참으로 복잡한 문제이므로 별도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런던의 트럭 운전수가 되어 보는 것을 결론으로 하고 마칠 수밖에 없다. 파리에는 택시 운전수가 있었는데, 런던에는 로리 운전수가 생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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