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영국은 다른 나라와 다른 대처법으로 임했다. WHO마저도 영국 조치의 소극성을 지적했다. 영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국경을 차단하는 것으로써 막을 수 없고, ‘살려야 한다!’는 문구를 써 놓고 집중 치료를 함으로써 물리칠 수 없다고 봤다. 막을 수 없다는 측면에서 감기와 유사성이 있지만, 독감보다 치명적이고, 환자의 면역력에 따라 증상의 깊이와 악화의 속도에 큰 편차가 있음에 주목했다.
많은 사람이 감염될 수밖에 없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방역이나 치료의 영역이 아니라 돌봄의 영역이라고 봤다. 감염자가 증상을 보일 때, 유증상자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그 돌봄이란 이마에 젖은 수건을 대주는 것에서부터 말동무를 해주는 것까지를 포괄하며, 해열제를 가져다주는 것에서부터 촛불을 들고 문밖을 서성이는 것까지를 포괄한다.
중요한 것은 주사가 아니고, 물수건이라고 봤다. 필요한 사람은 의사가 아니고 간호사라고 봤다. 그리하여 간호사로 대표되는 돌봄 인력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학교 닫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대부분의 간호 인력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인들에게 외출 자제를 권고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적극 돌봄을 요하는 환자수를 줄이고, 돌봄이 가능한 가용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선진국들은 공통적으로 간호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영국의 현재 간호사 수는 300 000명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피크를 감당할 수 없다. 영국에 가장 쉽게 이민 올 수 있는 직업군이 간호사다. 왜 선진국에는 간호사가 부족할까? 간호사는 대표적인 3D 업종이다.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이다. 그 많은 3D 업종 중에 간호사만큼 오래 공부해서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직업은 없다. 영국에서 간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중단하는 비율이 1/3을 넘는다고 한다.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나이팅게일은 간호사에게 자격증을 부여하는 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반대했다. 간호는 숭고한 자발성의 영역이지 자격증의 영역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이팅게일은 매우 영국적인 인물이었다.
가장 존경받는 영국인 52위에 자리하고 있는 나이팅게일은 영국인이지만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아주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피렌체에 있는 포시즌 호텔 같은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이런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아마도 뒷목 잡고 자빠졌을 것이다. 당시에 간호사는 의사의 하녀에 불과했고, 의사조차도 명예로운 직업이 아니었다.
크림 전쟁 당시에 영국군들은 총에 맞아서 죽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부분은 작은 상처가 더러운 환경에 노출되어 세균 감염으로 죽었다. 이에 대해 아무도 주목하고 있지 않을 때 나이팅게일은 위생과 사망률의 통계를 제시함으로써 영국 정부가 군대와 병원의 위생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도록 만들었다. 나이팅게일 이전에 영국군의 부상자 사망률은 40%였는데, 나이팅게일의 위생적인 조치로 사망률은 2%로 떨어졌고 한다.(이 수치는 너무 극단적이어서 나중에라도 확인이 필요함)
전쟁에서 돌아온 나이팅게일은 1860년에 런던에 최초의 근대식 간호학교를 세인트 토마스 병원에 설립했다. 세인트 토마스 병원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입원했던 병원이다. 나이팅게일은 영국 왕립 통계학회 회원이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통계를 잘 다루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나이팅게일이 태어났던 이태리의 북부지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았다. 나이팅게일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이탈리아에 부모님이 있는 한 영국인 친구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정점에 달했을 때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탈리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식료품이나 의약품이 아니다. 고립감이나 외로움과 같은 심리적 내상이다. 무엇보다 돌봄이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상황이다.'
영국에서는 민간 Mutual Aid Network가 생기고 있다. 동네마다 상호 부조를 위한 자발적인 협력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편번호로 검색을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과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다. 지역마다 채팅방이 개설되어 있으며,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노인층을 서로 연결하고 지원하는 방안도 채팅방에서 논의되고 있다.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고립감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자발적인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취약계층을 자꾸 고립시킴으로써 전염병을 퇴치할 수는 없고, 고립감을 상호 부조를 통해 해소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나이팅게일이 그렇게도 원했던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은 숭고한 돌봄의 영역일 것이다. 민간의 자발적 돌봄을 중시하는 이러한 영국식 대응을 ‘19세기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에서 한가롭게 크리켓 게임을 하는 방식의 대응’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교롭게도 그때가 바로 나이팅게일이 활동하던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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