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치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논란 끝에 통과되었다. 공수처법 반대론자인 조응천 의원과 금태섭 의원의 투표가 관심사항이었다. 조응천 의원은 찬성했고, 금태섭 의원은 기권했다. 이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응도 격렬했다.
우리 정치에 있는 여러 신화 중에 으뜸은 이거다.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서 양심에 따라 활동한다.’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이 독립적 헌법기관이라는 것은 법률적으로 따져 봐야 할 문제다. 다만 국회의원의 독립적인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고, 나아가 특권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회의원은 지역구 유권자의 의사로부터 독립할 수 없고, 소속 정당의 의사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독립할 수 있지만, 독립할 경우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당은 국회의원을 담는 그릇으로서 국회 운영은 정당 위주로 돌아간다. 교섭 단체를 구성하지 못하는 정당은 존재감이 없다. 선거 시에 지불되는 보조금도 정당에게 지불되며, 지불된 선거 보조금은 정당에서 알아서 사용한다. 개개인이 모두 헌법 기관이라고 하면, 교섭단체 제도와 정당 보조금은 모두 차별적 위헌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도까지 도입하였다. 앞으로는 더욱 정당에 방점이 찍히는 정치가 펼쳐질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가 태동한 영국은 어떤가? 자유주의의 나라 영국에서 국회의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따금 정당이 투표 방향을 정하지 않고 자유투표를 허용하기도 한다. 당내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에 그렇고, 역사적으로는 음주법, 사형제 폐지법, LGBT 관련법 등에 양심 투표를 허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영국의 정당에는 whip이라는 직책이 있다. 정당의 투표 방향을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하거나 강제하는 역할을 맡는 의원들로 주요 정당에 15명가량의 whip 의원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소속 의원에게 내리는 메시지는 세 가지로 나뉜다. one-line whip이 있고, two-line whip이 있으며, three-line whip이 있다. 원 라인은 정당의 투표 방향 권유라고 할 수 있다. 투 라인은 투표에 참여하여 정당 안을 지지하라는 지침이다. 쓰리 라인은 반드시 사수해야 할 명령으로 투표에 불참하거나 정당 안을 따르지 않을 경우 강력한 징계 조치가 따를 수 있다. 쓰리 라인 휩을 거스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브렉시트로 영국 의회가 대 혼란을 겪었다. 그때는 쓰리 라인 휩이 몇 차례에 걸쳐 무시되었다. 보리스 존슨이 총리가 된 후에 자신의 브렉시트 안에 대해 강력한 쓰리 라인 휩을 발령했으나, 21명의 보수당 의원들이 반발했다. 이들은 보리스 존슨보다 정치 경력이 많고 보수당 내에 입지가 튼튼한 국회의원이었다. 윈스턴 처칠의 손자도 있었다. 보리스 존슨은 21명 전원을 출당시켰으며, 이들 중에 10명은 항복 선언을 하고서야 다시 보수당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이번 선거법이나 공수처법은 three-line whip이었다. 어쩌면 그것도 부족해서 six-line whip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중요한 법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중요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민주당에게는 그랬다. 그러한 법에 한 국회의원이 당론과 배치되는 기권을 했다. 국회의원으로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당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정당은 그런 국회의원을 징계해야 한다. 그런 징계가 정당의 민주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다. 정당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투표에 가서는 three-line whip이 지켜져야 한다. 전투에서 작전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작전이 개시되고 ‘진격 앞으로!’가 선언되면, ‘나는 그게 아닌 것 같으니까 뒷걸음칠래!’라는 행동은 있을 수 없다. 만일 있었다면 그 병사는 다음 전쟁에는 나갈 수 없다.
민주당은 금태섭에 대한 징계를 머뭇거렸다. 비민주적 정당으로 비칠까 두려웠던 모양이다. 징계는 출당 조치일 수도 있고, 공천 배제일 수도 있고, 경선에서 감점을 주는 약한 징계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정당이 정당의 정책에 반하는 투표를 한 국회의원을 징계하는 것이, 곧 그 정당은 비민주적이다’는 의미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금태섭 의원을 징계하지 않았지만, 민주당원은 그를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three-line whip의 중요성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확신시켰다.
(2020년 1월 3일 쓴 글을 4월 14일에 수정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