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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pr 14. 2020

영국의 선거와 한국의 선거

영국 정치

우리나라의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한 후보들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영국은 지난해 12월 12일에 조기 총선을 치렀다. 영국 국회의원은 임기가 5년이지만, 브렉시트 문제를 풀지 못해 국회가 해산되어 2년 6개월 만에 다시 총선을 치렀다. 보수당이 압승하여 브렉시트 교착상태가 해소되었다.


영국 선거제도와 한국 선거제도의 특징과 차이점을 몇 가지 살펴본다.

  

하나, 선거일은 휴일인가?

영국에는 국가 행사일을 휴일로 삼는 경우가 없다. 국경일이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선거일도 휴일이 아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투표소를 찾아 투표하면 된다. 회사 업무 때문에 투표 못한다는 생각은 없다. 한국은 보궐선거를 제외한 일반 선거는 휴일이다.


둘, 한국은 수요일에 영국은 목요일에

한국은 수요일에 선거를 치른다. 주말과 가까우면 휴가를 내고 여행 갈 수 있기에 연휴나 샌드위치 데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요일을 선거일로 잡는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목요일을 선거일로 잡는다. 과거 영국에서는 목요일에 시골장이 섰다. 시골 사람들이 읍내로 많이 모이는 목요일을 선거일로 잡았다.


셋, 연동형 비례대표는 없다.

한국은 연동형 비례대표 제도의 채택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주요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제도 도입의 취지가 훼손되었다. 연동형 제도와 위성정당의 등장은 한국 정치사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영국은 650개 지역구에서 한 명의 국회의원을 선발하는 소선거구제다. 연동형 비례대표는 물론이고 단순 비례대표도 없다. 사표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으나, 사표를 방지하겠다는 생각은 지나친 이상주의라고 믿는다. 사표를 없애려고 나온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역사적 경험도 있다. 제도는 늘 어느 정도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넷, 투표 시에 신분증은 필요 없다.

영국은 투표하러 갈 때 신분증을 가져갈 필요가 없다.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말하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면 된다. 영국엔 신분증이라는 것도 없지만, 투표소에서 본인 확인 절차도 없다. 이건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 영국 사람들은 투표 부정은 생각하지 않는가?


다섯, 대리인에 의한 투표도 있다.

사전 신고에 의해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고, 대리인을 지정해 대리 투표를 할 수도 있다. 가족인 경우 숫자 제한 없이 대리 투표를 할 수 있고, 가족이 아닌 경우 한 사람이 최대 두 명의 투표권까지 대리 행사할 수 있다. 영국은 투표 부정에 대한 우려가 없는가?


여섯, 영국의 선거에는 부정이 없었나?

그럴 리 없다. 윌리엄 호가스는 1755년에 ‘선거 향응(An Election Entertainment)’이란 그림을 그렸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그림으로 휘그당 입후보자 두 명이 유권자에게 향응을 제공하는 장면을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후보자 중에 하나는 임산부의 배를 만지면서 밀담을 나누고 있고, 다른 하나는 술주정뱅이 옆에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시장(mayor)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고, 선거 관리 위원은 토리 당원이 던진 벽돌에 맞아 실신해 있다. 길거리에는 반유대주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선거에서 향응을 제공하는 모습


일곱, 로얄 패밀리는 투표를 하는가?

로얄 패밀리에게도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권이 있지만, 관행적으로 투표하지 않는다. 의회는 왕의 세금 징수를 견제하는 기구였다. 왕과 왕의 가족이 국회의원의 선발에 관여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한국의 대통령은 투표권이 있고 실제로 투표권을 행사한다. 국회가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면, 논리적으로 대통령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덟, 투표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18세 이상 남녀에게 있다. 영국은 1970년에 투표권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조정되었다. 고등교육 과정 마지막 학년부터 투표권을 가진다는 의미다. 그들은 이미 어른이다. 우리나라도 21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투표 연령이 18세로 하향 조정되었다.


아홉,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은 어떻게 선거에 관여하는가?

선거는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의 장이다. 영국의 초중고등학교는 투표일 전날이나 투표일에 학교에서 모의 선거를 진행한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학생과 선생님이 여러 정당의 대표가 되어 정책을 발표하고 토론한다. 모의 투표 결과는 공개되고 전국적으로 집계되어 발표되기도 한다.


열, 지역별 연령별 투표 성향이 있는가?

영국의 대도시와 산업도시에서는 노동당이 강하며, 시골 지역에서는 보수당이 강하다. 노인층은 보수당에 투표하는 성향이 높다. 노년층 투표율이 젊은이들의 투표율보다 20%가량 높다. 대도시와 시골의 투표성향, 노인층과 젊은 층의 투표성향은 영국과 한국이 비슷하다.


당선자의 거만한 모습과 불복하여 일어나는 폭력 장면


열 하나, 국회의원은 으스대는가?

영국의 경우 국회의원은 일억 원 정도의 연봉을 받으며, 보좌관 고용과 사무실 유지 비용을 지원받는다. 지방 의원의 경우 런던 변두리에 작은 아파트를 렌트할 수 있을 정도의 비용을 지원받는다. 우편 요금과 문방구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차량이나 기사는 제공되지 않으며, 국회의원 대부분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본회의 장면을 보면 여성 의원들이 커다란 백을 들고 있는 장면이 눈에 띈다. 국회에 자기 사무실은커녕, 맘 놓고 쉴 공간도 없다는 의미다. 본회의 장소에 자기 자리가 없으며 오는 대로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그나마도 300석 밖에 없어서 늦게 들어가면 끼여서 앉거나 통로에 쭈그리고 앉아야 한다. 국회의원은 일하는 자리지 으스대는 자리가 아니다. 650명 중의 한 명의 국회의원이 으스댈 여지가 없다. 과거에는 무척이나 거들먹거렸던 모양이다.


열 둘, 그림에 잘 나타난다.

윌리엄 호가스의 ‘선거의 유머’ 시리즈는 1754년에 진행된 선거 과정을 묘사한 그림이다. 선거 향응을 나타내는 그림(위 첫 번째), 돈으로 표를 사는 모습을 나타내는 그림(제목 바탕), 분주한 투표장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아래), 당선된 의원의 거만한 모습과 이에 불복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그림(위)이 있다. 모두 Sir John Soane’s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 방대한 개인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 존 소안 뮤지엄은 영국식 House Museum의 진수를 보여 준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꼭 가봐야 할 곳이다.


분주한 투표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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