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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Oct 15. 2021

‘풍선을 든 소녀’와 ‘사랑은 쓰레기통에’

London Life

뱅크시의 작품: ‘풍선을 든 소녀’와 ‘사랑은 쓰레기통에’

  


미술에 관한 속보입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미술에만 국한된 일이겠습니까?

   

2018년 10월이니까 불과 얼마 전이죠. ‘풍선을 들고 있는 소녀(Girl with Balloon)’라는 작품이 소더비에서 경매되었죠. 이 작품은 런던의 길거리에 여러 번 그려진 작품이기도 했고, 인쇄된 작품이 경매된 적도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경매는 아니었습니다. 뱅크시(Banksy)가 유명하니 어느 정도 가격은 가질 것이라고 예상한 정도였죠. 그런데 생각보다 비싼 가격인 1,042,000파운드(16억 원)에 낙찰이 되었죠.


낙찰이 되자마자 작품이 파쇄되기 시작하여, 작품의 절반이 파쇄되고 멈췄죠. 원래는 완전히 파쇄될 예정이었는데, 기계 결함으로 중간에 멈춘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언론에 가십으로 소개되었지요.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근엄함에 대한 풍자, 미술시장 과열에 대한 비판,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냉소로 이 사건이 언론에 다뤄졌지요.



파쇄에 불만을 가진 낙찰자가 작품 인수를 거부하면, 그에 대한 책임은 뱅크시가 지기로 약속된 상태였습니다. 이 작품과 퍼포먼스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미술계 밖의 관심을 끌어 모았죠. 안목 있는 낙찰자가 작품 인수를 거부할 까닭이 없지요. 경매가 시작될 때는 ‘풍선을 들고 있는 소녀’라는 작품명을 가졌지만, 작품이 낙찰자에게 인도될 때는 ‘사랑은 쓰레기통에(Love is in the Bin)’라는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가치를 가지게 되었죠.


앞으로 미술품 파괴와 관련한 작품이나 미술품 파괴 퍼포먼스는 모두 이 작품에 대한 짝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뱅크시가 개념을 선점한 것이지요. 최초라는 것에는 그런 의미가 있죠. 매우 희귀한 것이 아니라, 그냥 유일무이한 것이니까요. 유사 제품은 모두 모방품이 되니까요. 이것만이 진품이니까요. 이 작품은 경매 역사상 최초로 경매 진행 중에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죠. 미완성품의 경매 또한 이제 모두 이 작품의 짝퉁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이 작품이 한 시간 전에 소더비에 나와서 낙찰되었습니다. 재판매 가격은 무려 또는 겨우 16,000,000 파운드(256억 원)입니다. 3년 만에 1500% 수익률입니다. 비트코인이 뭐죠? 안 부럽네요. 세금도 많이 내겠네요. 과세당국도 좋겠네요.



16백만 파운드라는 거금으로 누군가 샀지만, 이 작품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올라갈 겁니다. 왜냐면 돈은 많고, 이 작품은 하나뿐이니까요. 단지 작품만 하나인 것이 아니고, 개념을 선점하고 있는 the only one이기 때문이죠. 희소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플레이션 시대에 중요한 것은 희소성 투자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죠. 주식은 하락해도 비트코인은 오르는 이유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로지 뱅크시의 단독 아이디어인지, 소더비와 공동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에 소더비는 장사 천재고, 뱅크시는 미술 천재입니다. 뱅크시가 누구죠? 비트코인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처럼 뱅크시도 베일에 가려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현재 46세로 추정되며, 여전히 활동 중이기 때문에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꽤 있죠.


브리스톨에서 자랐고 어릴 적에 학교에서 쫓겨났고, 감옥에도 갔다 왔다네요. 14세부터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담벼락 그림이 불법이었기에 무명으로 활동했습니다. 유명세를 타면서 2000년에 런던으로 이사를 왔고, 2003년부터 런던 시내 이곳저곳에 ‘풍선을 들고 있는 소녀’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런던 거리에 그린 작품은 그가 더 유명해지기 전에 대부분 훼손되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Money is in the Bin이 되어 버린 셈입니다.


그니까 벽에 있는 낙서도 함부로 지우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벽에 낙서 지우는 것도, 뭔가를 적폐라고 생각해서 부숴 버리는 것도 조심할 일입니다. 그런 것이 상황에 따라서는 반달리즘(Vandalism)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지금 런던에서는 London Frieze라는 아트페어(Art Fair)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어제 시작되어 일요일까지 진행되는데, 첫날은 VIP만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런던에 돈 꽤나 있고, 그림 꽤나 모으는 사람들은 모두 어제 리전트 파크에 모였다고 하는데요. 돈이 될만한 작품은 첫날 다 팔린다고 합니다. 물론 저는 안 갔지요.


토요일 일요일 티켓은 매진이지만, 어떻게든 구해서 다녀와야겠습니다. 이런 곳에 다니지 않는 것이 재테크에 대한 반달리즘 같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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