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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Oct 29. 2021

고급스러운 곳에서는 왜 더 수다스러워지는가?

Lindon Life

불필요하게 공격적이 되지 마라

    

     

영국에서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를 즐기러 가면, 사람들이 참 시끄러워요. 고급스러운 분위기일수록 사람들은 수다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나요? 어제는 오랜만에 애프터눈 티에 갔는데 얼마나 시끄러운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더군요. 큰 소리로 stop talking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더군요. 근데 우리도 티를 사이에 두고 네 시간이나 떠들다 왔어요. 머리가 아픈 것은 다른 사람이 떠들어서가 아니고,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였어요.



얼마 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올 때니까, 아침 8시 30분 무렵이었어요. BBC 라디오 4 방송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진행자와 대담 중이었어요. 탱크로리 기사가 부족하여 주유소에 기름이 부족하던 때였어요.


총리가 말을 쏟아내고 있는데, 진행자가 말을 끊고 다른 질문을 하려고 했죠. 총리가 계속 말을 이어가자 진행자가 ‘stop talking’이라고 말했어요. 청취자인 내가 오히려 당황스럽더라고요. 진행자가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고, 총리는 혼잣말로 ‘스탑 토킹이 뭐야?’라고 중얼거릴 뿐이었죠. 대담을 끝낼 때 진행자는 Thank you for TALKING이라고, 토킹을 유난히 길고 강하게 발음했어요. 총리는 ‘말도 못 하게 하면서 감사하다니, 그래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마무리했어요.



스탑 토킹을 우리말로 하면, ‘그만 좀 떠들어!’ 정도라고 할까요? 영국인이 그 정도 노골적으로 상대방에게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특히나 상대는 총리 아닌가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이 없더라고요. 정부를 믿지 않고 정부를 괴물로 보는 태도가 영국인의 특징 중 하나이긴 하죠. 그런 사회이기 때문에 고위직 관료에 한해서 stop talking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요? 그게 아니면 BBC의 무례함이나 편견 같은 것인가요?


며칠 전에 타임스(The Times)가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기사를 썼어요. BBC 진행자 닉 로빈슨(Nick Robinson)의 무례한 태도는 영국의 ‘재미 장관’인 나딘 도리스(Nadine Dorries)를 격분시켰다고 해요. ‘재미 장관’이란 디지털, 문화, 미디어와 스포츠를 관할하는 정부 부처의 책임자예요. 재미있는 일만을 관장한다고 하여 ‘재미 장관(Minister of Fun)’이라고 부르나 봐요.



지금 시기는 공교롭게 나딘 도리스가 BBC와 라이선스 계약 연장을 협상하는 때예요. BBC는 닉 로빈슨의 스탑 토킹이라는 두 단어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 같아요. 그러나 자존심의 BBC는 그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주저하고 있어요. BBC 사장이 ‘우리는 불필요하게 공격적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로 우회적으로 사과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해요. 사과는 진심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해야 하죠. 사과 후에 개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릴 필요도 물론 없고요.


우리는 누구에게도 불필요하게 공격적일 필요가 없어요(We should not become unnecessarily aggressive). 상대가 정치인이어도 마찬가지고 고위 공직자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정치인끼리도 마찬가지고, 지지자끼리도 마찬가지죠.


우리나라에도 스탑 토킹 못지않은 전설적인 장면이 있어요.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불필요하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죠. 이정희 후보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지대한 공을 세웠어요.


이번 대선은 역대급 혐오 대선이 될 수도 있어요. 여야의 유력 후보가 품위 없기로 막상막하니까요. 때문에 서로 불필요하게 공격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죠. 공격적일 때는 공격적이더라도 불필요하게 공격적일 필요는 없죠. 불필요하게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그에 대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것이 좋겠어요. 나 같은 유권자 입장에서는 이미 어떻게 되어도 마땅치 않게 되어 버렸는데, 품격의 대선은 고사하고 추태라도 덜 봤으면 좋겠어요.


애프터눈 티 대선 토론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여야 후보가 마주 보고 앉아서 애프터눈 티를 따라주면서 대선 토론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 입맛이 서로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지나치게 공격적이지 않으면서 수다스러운 대선 토론이 되겠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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