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암스테르담에서 10명의 고흐를 더 만나다.
암스테르담에 와서 가장 기대되는 곳은 고흐박물관과 라익스박물관(Rijksmuseum)이다.
런던의 코톨드 갤러리에서 고흐 자화상 봤을 때, 동반자는 16점의 자화상에는 각기 다른 16명의 고흐가 있다고 했다. 고흐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매번 다른 고흐가 되었던 모양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자신의 노래를 한 번도 같은 스타일로 부른 적이 없는데, 그녀도 노래를 할 때마다 매번 다른 사람이었다. 멋을 부리기 위해 일부러 다르게 부른 것이 아니다.
자화상의 고흐는 눈빛이 다르고, 표정이 다르며, 자신감이 다르고, 얼굴 윤곽이 다르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렘브란트 그림을 보면, 정면을 보고 있어도 뒷모습이 보인다’라고 썼다. 렘브란트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고흐의 자화상에도 각기 다른 고흐의 등이 보인다.
모든 다른 것 중의 백미는 화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흐가 자신의 화풍을 확립하기 위해 이런저런 실험을 했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 그것은 실험이 아니다. 다른 고흐는 다른 붓터치로만 표현이 가능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창법을 실험하기 위해서 이렇게도 부르고 저렇게 부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의 자신을 표현할 방법은 그날의 그 창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코톨드에서 16명의 고흐를 보고 난 직후 암스테르담을 생각했다. 런던에서 도버까지 두 시간, 도버 해협을 건너는데 30분, 칼레에서 암스테르담까지 네 시간을 달려왔다.
고흐 박물관에는 원래 13명의 고흐가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고흐 3명이 코틀드에 출장 중이어서, 이번에는 10명만 만날 수 있었다. 라익스뮤지엄에는 자화상 한 점이 있는데, 고흐 자화상 중에 색감과 붓터치가 가장 경쾌한 작품이다. 그 한 점을 라익스뮤지엄은 코톨드에 내주었다. 코톨드 전시가 미쳤다는 것이 암스테르담에 와 보니 더 확연하다. 코톨드는 최고작을 빌려 준 암스테르담의 두 박물관에 감사해야 한다.
고대하고 온 고흐박물관은 나의 기대를 크게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고흐라는 화가의 미술사적인 의미와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의 풍요가 결합하여 인상적이며 모던한 갤러리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박물관은 어딘가 모르게 분열적이었고 불편했다. 고흐의 작품 중에 가장 중요한 자화상이 안내 데스크 앞의 복도 같은 곳에 대충 전시되어 있다. 난감한 전시 환경 탓에 전시품이 진품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2층에 해바라기, 추수, 침실과 같은 주요 작품이 있으며, 3층에 습작과 스케치가 있고, 4층에 다시 아몬드꽃과 같은 중요 작품이 드문드문 있다.
작품이 마음속에 푹하고 박히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지 않은 무엇인가가 스윽 들어왔다가 지나가 버린다. 이곳에 있는 작품이 저곳에 있어야 할 것 같고, 저곳에 있는 작품이 이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배치다. 작품의 배치와 함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박물관 건물의 구조다. 모든 것이 고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어리둥절하고 화가 났다. 무언가의 어딘가를 잘라 버려야 할 것 같다.
고흐박물관과 이웃해 있는 라익스박물관은 기대를 크게 웃돌았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현대식 로비는 ‘박물관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교과서 같았다. 로비에 머물며 커피만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고, 관람욕이 솟구친다. 모두가 기대하는 암스테르담의 위용과 세련미가 여기에 있다.
라익스뮤지엄을 나와 다시 고흐뮤지엄 쪽을 바라본다. 고흐가 만약 라익스뮤지엄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고흐를 영광스럽게 만들까? 불편하고 분열적인 환경에서도 찬연히 빛날 수 있었던 인물이 있다. 위대함은 환경의 구애를 받지 않는 법이며, 환경 탓에 위대함을 놓치는 것은 그저 평범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