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프랑크가 사랑했던 암스테르담

London Life

by 유우리

안네 프랑크가 사랑했던 암스테르담

카날하우스는 카날을 면한 건물 폭의 길이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로에 면한 폭은 좁고 위로 높으며, 건물과 건물은 모두 붙어 있다. 건물 안에서 밖은 잘 볼 수 있지만, 밖에서 건물 내부나 마당 쪽을 볼 수는 없다. 많은 카날하우스가 운하로 운송되는 무역 물품의 창고로 쓰이기도 했고, 창고의 활용도를 높이기 의해 뒷마당 쪽으로 부속 건물을 짓기도 했다. 부속 건물의 크기는 세금과 관련이 없게 되는 셈이다.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는 아버지 회사의 창고로 쓰였던 카날하우스의 부속 건물이었다. 이곳에서 안네는 2년 넘게 은신했다.


은신 중에도 날마다 영국 BBC 방송을 들어서 전황을 잘 알고 있었다. 소련군이 폴란드까지 온 것과 연합군이 상륙작전에 성공한 것도 알고 있었다. 희망이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1944년 6월에 개시되었고, 암스테르담 인근의 주요 도시인 안트베르펜을 연합군이 탈환한 때가 1944년 10월이었다.


[안네의 일기] 후반부를 읽으면서 독자는 숨 막히는 긴장을 준비한다. 정해진 날의 정해진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네의 사고력과 철학적 깊이는 일기를 쓰는 과정에서 나날이 깊어진다. 그러한 문학적 깊이는 8월 1일에 절정에 달한다. 그리고 책은 절정에서 마무리 없이 갑자기 끝난다. 어떤 베스트셀러가 이렇게 끝을 맺을까? 8월 4일 게슈타포에게 체포되는 과정과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독자는 어느 순간 이것이 그녀가 쓴 일기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걸 알았다면 숨 막히는 긴장을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지난 일 년간 영국의 타임스에서 본 안네 프랑크 관련 기사가 10건도 넘는 것 같다. 안네 프랑크를 밀고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총 30여 명이 용의 선상에 올랐다고 하니 밀고자 조사가 여러 전문가에 의해 다각도로 이뤄졌다.



아버지 회사 창고도 안쪽으로 잘 만들어진 부속 건물이 있었고, 부속 건물은 카날하우스 정면과도 잘 연결되어 있었다. 창고와 사무실 근무자가 없는 저녁이나 휴일이면 카날하우스 정면에서 밖을 볼 수도 있었다. 은폐와 개방성 모두를 갖춘 훌륭한 은신처였기에 밀고가 아니고서는 발견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안네 프랑크가 가장 희망에 찼던 그 순간에 그들을 밀고한 놈은 과연 누구인가?


내가 머무는 호텔도 카날을 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저치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카날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며, 다음으로 차량이고, 그다음으로 걷는 사람이고, 그리고 보트다. 카날은 그렇게 흐름을 만들어 낸다.


건물 속에 있는 사람은 그 흐름을 보며, 정체된 느낌을 받는다. 안네 프랭크도 자신이 정체되고 있음을 인식했고, 전쟁이 끝나면 런던과 파리에 가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어 했다. 안네가 미술사를 전공한 후에 유대인이 그렇게도 좋아했던 고흐의 작품을 다루는 큐레이터가 되었거나, 고흐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허망한 생각도 해 본다.


안네는 밖에 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다. 카날을 보면 누구나 흐르고 싶고 달리고 싶다. 독일군은 유태인을 강제 수용하고 그들의 집에서 그림, 도자기와 가구를 가져갔다. 그리나 강제 수용 전에 그 무엇보다 먼저 가져간 것은 자전거였다. 유대인은 자전거 타는 것도 금지되었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좀 달려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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