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한참을 시대착오적이다

London Life

by 유우리

고흐와 히틀러, 그리고 푸틴

암스테르담에서 렘브란트와 같은 유명한 화가가 탄생하고, 미술이 발전한 것은 암스테르담이 상업적으로 발전하여 부르즈와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 곳에 그림이 있다.


유태인 중에는 늘 부자가 많았지만, 그림에는 소수의 유태인만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많은 그림이 종교적이었거나, 애국주의적이었거나, 우상숭배적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의 그림은 달랐다. 그들의 그림에는 종교적 색채도, 민족적 자부심도, 애국주의적 편향도, 우상숭배적 느낌도 없었다. 고흐의 그림은 더욱 그랬다. 고흐를 발견한 것도 유태인 비평가였고, 고흐 사후에 전시회를 처음으로 개최한 곳도 유태인 갤러리였고, 전시회를 호평한 비평가도 유태인이었다.


“반 고흐와 같은 후기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유태인들은 스스로를 미술사가, 미술 비평가, 미술 상인, 미술 감정가 그리고 화가로 느끼기 시작했다”라는 말이 있다. 유태인 아트 딜러의 열성적인 노력 덕분에 고흐의 작품을 수집하는 유태인이 많이 생겼다.



때문에 나치는 고흐 그림을 많이 압수할 수 있었다. 나치는 유태인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고, 그들에게서 그림과 도자기, 귀금속, 가구와 자전거를 빼앗아 갔다. 영화 ‘우먼 인 골드’에 보면, 나치 군인이 유태인은 창밖으로 던지지만, 그들의 그림은 정성 들여 모셔가는 장면이 나온다.


화가가 꿈이었던 히틀러는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흉내 낸 그림을 그린 적도 있다. 하지만 나치는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위풍당당하게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던 데다가, 지나치게 프랑스적인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치는 압수한 작품을 판매하여 전쟁 비용으로 사용했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의 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고흐 작품 중에 입수 경로가 의심스러운 것이 꽤 있다. NFT가 진작에 있었다면 거래 경로를 삿삿이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또 다른 많은 고흐의 그림이 나치 고위 관료에 의해 빼돌려져 사라졌다. 그들의 후손 중에 고흐의 그림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여럿일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자, 영국은 러시아 은행 다섯 곳의 자산 동결과 푸틴의 측근 세 명의 여행금지와 재산 동결을 선언했다. 푸틴의 계획을 승인한 국회의원 351명과 전쟁을 지지하는 러시아 재벌 30명에게도 동일한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 그들의 영국 내 재산을 속속들이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에겐 현금도 있고, 다른 나라 카드도 있고, 비트코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한때 런던 미술시장의 큰손이었으니 그림도 많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숨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세상은 놀랍도록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은 좋든 싫든 매우 투명하다. 그 연결을 끊고 잘 살 수 있을까? 암스테르담을 떠나며 생각에 빠진다. 푸틴은 한참을 시대착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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