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재벌이 되는 방법

London Life

by 유우리

러시아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 = 푸틴과 친구 되기

영국이 러시아 재벌과 금융기관 100곳을 제재 목록에 올렸다. 제재 대상이 되는 정치인과 비즈니스맨은 계속 추가될 전망이다. 영국인의 가장 강력한 요구는 첼시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라는 것이다. 첼시 구단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으라는 과격한 주장도 있다. 그러나 영국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어서 아무리 비상사태라고 해도 개인의 소유권을 쉽게 뺏을 수가 없다.


그래도 첼시 구단주는 완전히 긴장했다. 그가 첼시 구단에 빌려준 돈이 2조 원이며, 첼시 구단의 기업 가치는 7조 원이 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담할 수가 없다. 바짝 쫀 첼시 구단주는 구단의 운영을 신탁 기관에 맡기고 자신은 첼시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스라엘 국적도 가지고 있는 유대인으로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이다. 지난 5년간 영국 정부와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 오면서 많은 준비를 해 놓았다. 영국 정부가 섣부르게 재산을 동결하고 재산권을 제한했다가는 후에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따라서 영국 정부는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다. 소유권을 빼앗기지는 않아도 일시 동결은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보다 신속하고 강력한 제재를 독촉하는 사람들은 러시아 올리가르히는 기업인이 아니라 남의 돈을 가로채는 도둑이며 전범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푸틴을 후원한다는 점에서 전범의 테두리에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고, 그들이 기업인이 아니라 도둑이라는 것도 진실의 일단이 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올리가르히가 90년 대 말에 재산을 모으는 방식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러시아 재무부 장관이 골드만삭스 러시아 법인장과 술을 마시면서 특정 종목의 유로본드를 갚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말해 놓고 깜짝 놀라서 실수로 이야기한 것이니 절대 다른 곳에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다. 다음날 런던 금융시장에서 해당 유로본드가 폭락하여, 100 달러 짜리가 10 달러에 거래된다. 그러면 러시아 올리가르히는 러시아 은행에서 돈을 빌려 해당 종목을 바닥에서 모조리 긁어모은다. 재무부는 한 달 후에 해당 유로본드의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기상환을 발표한다. 러시아는 결국 99년도에 국가 부도를 선언한다. 그런 플레이를 일삼는 나라의 채권을 누가 만기 연장해주겠는가?


영국이 금융제재를 발표한 첫날에 포함되었던 러시아 재벌은 세명이었다. 내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었다. 찾아보니 푸틴 대통령 이전에는 어떠한 비즈니스도 한 적이 없었다. 푸틴 이전의 올리가르히는 큰 돈은 정부와 짬짜미로 벌었어도 시장에서 물건을 떼다 팔아 보기도 하고, 구르마를 끌고 휘발유도 팔아 본 사람들이다. 푸틴 이후의 재벌은 푸틴의 유도 친구, 삼보 친구, 뭐 그런 부류다. 그런 인물이 조 단위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원이 경제를 주도하는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의 석유공사가 러시아에 어느 유전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석유공사가 생산된 원유를 파는 것은 석유공사가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할 생각도 없다. 원유의 판매는 그 나라의 대통령과 연관되어 있는 누군가가 맡는다. 석유공사는 ‘브렌트유 시장 가격 마이너스 5%’ 이런 식으로 매각 가격을 보장받을 뿐이다. 푸틴이 대통령이 되면, 푸틴은 사람을 하나 석유공사에 보낸다. ‘앞으로 원유 판매는 내가 담당한다.’ 자원 기업은 절대로 국가와 척을 지면 안되기 때문에 기꺼이 말을 듣는다. 그 친구는 석유공사로부터 -5%에서 사서 -1%에 정유회사에 매각한다. 두 마디면 끝난다. ‘앞으로 너희 것을 얼마에 내가 산다.’ ‘앞으로 너희는 내 것을 얼마에 사라.’


석유공사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고 예를 들은 것이다. 쉐브론이나 쉘 같은 다국적 기업은 그러한 결정에 저항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다음 날 환경부에서 조사가 나오고 고지서가 발부된다. ‘너희들은 이러이러한 환경법을 위반했다. 벌금 500억 원이다.’ 다음 날 어떤 사람이 온다. ‘벌금을 100억 원만 내게 해줄 테니 100억 원을 어느 해외 계좌로 꼽으라!’ 고심 끝에 응하겠다고 하면, ‘벌금을 무효화할 테니 그냥 150억 원만 꼽으라!’라고 선심을 쓴다. 아무도 손해 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양심의 가책은 없다.


국가주도 자본주의에서, 자원주도 경제에서 조 단위 부자를 만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며, 조 단위 부자를 발가 벗기는 일도 쉬운 일이다. 따라서 러시아에 등장하는 새로운 신흥 재벌은 모두 푸틴의 측근일 수밖에 없으며, 기존 재벌은 반드시 푸틴의 측근이 되어야만 살아남는다. 러시아 재벌 중에 푸틴의 측근이 아닌 사람은 코인으로 돈 번 젊은이들뿐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부패가 만연한 사회였고,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도 있었다. 한국의 지도자는 자신의 측근과 기업인에게 허용하는 부패의 한도를 설정했던 모양이다. ‘임자! 그 정도로 하지!’ 그리고 한국 기업은 자원 기업이 아니고 재화를 생산하는 기업이었기에 글로벌 경쟁력이 중요했다. 부패는 그 경쟁력 안에서만 용납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부패는 지도자와 국민, 그리고 시장의 눈치를 보는 부패였고, 러시아의 부패는 양심의 가책이 없는 부패다.



부패로 번 돈의 상당수는 런던으로 들어왔고, 런던은 Londongrad라는 오명도 뒤집어썼다. 첼시나 햄스테드 지역의 수천만 달러 주택 중에는 러시아 재벌의 집이 즐비하다. 나는 러시아의 부패는 러시아 내부의 문제이며, 국제적으로는 러시아 부패를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발생한 이상, 이제 더는 러시아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는 설득력이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