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푸틴과 히틀러, 그리고 오토 프랑크
푸틴의 연설을 보며 말을 잘한다고 느꼈다는 사람, 감동했다는 사람도 보았다. 예전에는 말 잘하면 공산당이라고 했다. 공산당은 부르즈와지와 반혁명 세력에 대한 비인간적 공격을 자행해왔는데,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논리와 언변이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예산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말빨에 의해 결정되고는 했다. 공산당 지도자 중에 연설을 못하거나 말을 못하는 사람은 없다. 푸틴은 다른 공산당 출신 지도자에 비하면, 그런 능력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무엇보다 너무 진지하고 딱딱하며, 위트가 없고,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푸틴은 평화협상에 합의하더라도 우크라이나 비무장화는 반드시 달성한다고 했다. 자유시 참변 때 홍범도 장군 강아지가 풀 뜯어먹다가 사레에 들리는 소리하고 있다.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푸틴이 전쟁 전에 그리고 전쟁 후에 했던 말과 조건은 명분을 쌓거나 시간을 끄는 용도로 사용될 뿐이다. 연설을 잘하거나 말을 잘하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푸틴은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지 끝까지 간다고 말했다. 어떠한 결론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거나, 그들을 다 죽이거나, 우크라이나 서쪽으로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 러시아군의 전력으로 봤을 때, 끌어낼 수 있는 결과가 그렇게 다양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것은 일단 차치하자.
그는 신음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에 동정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자신은 어릴 적부터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에서 부당한 공격으로 신음하는 인민을 너무 많이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정신 상태가 우려된다. 정상의 인간이라면, 그걸 보아왔다면 동정이 더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하나의 국민이 아니라는 말도 했다. 이는 자기가 일주일 전에 했던 말을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다. 우크라이나는 한 번도 독립적인 민족이나 국가인 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이다. 레닌이 우크라이나를 별도의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만들었을 때, 우크라이나 사람과 러시아 사람의 차이를 인정했기 때문이며,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강력한 요구가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악행을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럽지만, 히틀러의 악행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사실에 놀란다. 히틀러는 자신들에게 해가 될 것 같은 공산주의 국가나 역사적 적대국가를 공격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특정 인종 집단을 모조리 없애겠다고 생각했고, 뿐만 아니라 집시와 동성연애자를 모조리 제거하려고 했다. 그들이 어떤 정치적 입장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청소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걸 실행에 옮겼다.
푸틴이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적겠으나 히틀러의 만행이 조작되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 일부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도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안네의 할아버지가 은행을 소유한 은행가였고,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1차 대전에서 독일군 장교로서 독일을 위해 싸웠다.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동수단이다. 2차 대전 중에 독일군이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를 다 빼앗아 간 이야기를 포스팅한 적이 있다. 1차 대전 중에 독일군은 점령지에서 말과 소를 빼앗아 갔다. 오토 프랑크가 명령에 의해 어느 시골에서 말 두 필을 징집했다. 농부는 오토 프랑크가 써준 징집 확인서를 면전에서 찢어 버리면서 강력히 저항했다. 오토 프랑크는 자신과 독일군의 명예를 걸고, 전쟁이 끝나면 말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전쟁이 끝나고 오토 프랑크의 친구와 친척 중에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오토 프랑크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사 통지서를 받지 못했기에 오토 프랑크의 어머니는 그를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전쟁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난 후에 오토 프랑크는 당당한 장교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는 거지 행색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과 독일군의 명예를 위해 농부에게 말을 돌려주고 오느라고 한 달이나 늦게 집에 도착한 것이었다.
오토 프랑크가 위협을 느껴 프랑크푸르트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옮길 때까지 그는 한 번도 유대인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스스로를 독일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독일과 독일군의 명예를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히틀러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이었기에 죽어야 했을 뿐이다.
2차 대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것은 소련이다. 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했다.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봉쇄하여 무고한 시민을 굶겨 죽였는데, 소련지역 민간인 사망자가 13백만 명을 넘는다. 안네 프랑크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서 비슷한 시기에 죽은 따냐 사비체바도 안네 프랑크와 같이 일기를 썼다. 그 일기에도 전쟁의 참상이 속속들이 적혀 있다. 이차 대전 때에 죽은 13백만 명의 소련 민간인 중에 4백만 명이 우크라이나인이었다. 우크라이나인은 소련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죽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동원된 소련군이 60만 명이 넘는다. 그중에 수만 명은 우크라이나인일 것이다. 그들은 모두 소련의 명예를 걸고 소련의 깃발 하에 전쟁에 참여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는 한 번도 별도의 민족이거나 국가였던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우리는 늘 같이 싸웠고 같은 명예를 위해서 싸운 형제다’라고 말했다면, 푸틴의 말에는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그렇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의 어려움 따위에 동정이 가지 않는다’라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히틀러처럼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히틀러처럼 보인다. 그는 어떠한 결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을 했다. 영국 언론은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이라는 말에서 그는 한 가지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바로 자국민에 의해 자신이 축출되는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그의 인기는 항상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히틀러처럼 보임으로 해서, 그는 이제 내부의 공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처했다. 이것이 바로 사면초가를 넘어서는 오면초가다.
S&P는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지 일주일 만에 러시아 신용등급을 BB+에서 CCC-로 무려 8단계 하향 조정했다. 오면초가를 넘는 육면초가다. 푸틴을 말할 것이다. 아이 돈트 케어(난 신경 안 써!) 까까야 라즈니차(무슨 차이가 있어?)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발샤야 라즈니차(большая разница! 큰 차이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