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전쟁이 아닌 발레를 하라

London Life

by 유우리

백조의 호수 관람 후기:

러시아는 전쟁에서 최고인 적이 없다

러시아 발레리나, 음악가, 미술가 등은 살아 남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다. 그걸 눈치라고 말하는 것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인 그들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평화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우크라이나를 돕겠다고 하며, 누군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반 푸틴이었다고 말한다. 오로지 러시아 국적 또는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탈랴 오시포바가 오데트 역을 맡은 로얄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가 로얄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다. 오늘의 무대는 음악과 춤, 무대 미술과 의상, 그리고 조명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27명의 백조가 관객을 향해 대형을 갖추었을 때, 그 모습이 잠시 공군 폭격기 편대처럼 느껴졌던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나탈랴 오시포바가 볼쇼이 최고 무용수가 되기 전에, 그녀는 볼쇼이 발레단과 함께 로얄 오페라 하우스에 왔다. 런던의 관객은 시즌마다 세계 최고의 발레를 접하기 때문에 발레에 대한 이해 수준이 매우 높다. 자신이 볼쇼이와 러시아를 대표한다는 중압감에 짓눌렸던 그녀는 ‘이게 나의 마지막 무대다. 나는 오늘을 끝으로 더 이상 발레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돈키호테의 여주인공 역을 공연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스스로 크게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2010년까지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였다. 내가 발레를 보기 위해 모스크바에 갔을 때에 그녀는 이미 볼쇼이를 떠난 후였기 때문에 나는 오늘 처음으로 그녀의 공연을 봤다. 그녀는 36세로 젊지 않은 나이에 로얄 오페라 하우스의 수석 발레리나다. 실루엣은 젊을 때 같지 않고, 나이는 화장으로 커버될 수 없었다. 22명이 뛰는 축구장에서 호날두가 가장 나이 든 선수로 보이는 것처럼, 27명의 백조와 함께하는 군무에서 그녀는 가장 나이 든 백조로 보였다.



그러나 축구장에는 여전히 호날두를 보기 위해 축구팬이 몰리듯이, 오페라 하우스에는 여전히 오시포바를 보기 위해 발레팬이 몰렸다. 러시아 사람이 유독 많았고, 우리 양쪽으로도 러시아 관객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망원경을 꺼냈고, 탄성을 내뱉었다. 내 왼쪽에 앉았던 여성은 2010년에 볼쇼이에서 그녀를 봤다고 했다.


나: 지금과 비교해 그때는 어땠나요?


그녀: 훨씬 젊었고 이뻤죠. 점프는 더 높았고 회전은 더 빨랐죠. 그러나 연기는 지금이 훨씬 좋은데요.


나: 볼쇼이와 로얄 오페라 하우스는 어떻게 다른가요?


그녀: 극장요? 아니면 발레요?


나: 백조의 호수 발레요.


그녀: 볼쇼이 공연보다 오늘 공연은 장엄미 측면에서 덜한 것 같아요. 클라이맥스도 그렇고 이곳 공연은 보다 절제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거기는 거기대로 좋고, 여기는 여기대로 좋죠. 이건 백조의 호수잖아요.


그렇다. 이것은 백조의 호수였다. 발레는 백조의 호수라는 생각을 가져왔지만, 백조의 호수는 발레 중의 최고가 아니라 모든 공연 예술을 통틀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무대에서 공연한 적이 있는 고성 오광대나 동래 학춤을 다 통틀어서도 말이다.


갑자기 인류 역사 속에서 러시아는 한 번도 전쟁에서 최고였던 적이 없고, 전쟁에서 재능을 보여준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각자의 재능이 있는 곳에서 각자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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