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좌파가 말하는 공공의 돈과 우파가 말하는 납세자의 돈
영부인의 의상 비용은 국비로 지출되었는가? 사비로 지출되었는가? 국비로 지출되었다면 어떤 예산 항목인가? 사비로 지출되었다면 모든 비용을 본인이 부담했는가? 누구의 사비인가? 영부인의 의상에 관한 질문은 정치 공세인가? 도덕성을 흠집내기 위한 부당한 공격인가?
어떤 공세에는 복수심이나 악의가 있고, 어떤 반발에는 내로남불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특별한 의도나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궁금하다, 투명하면 좋겠다, 개선할 것이 있으면 개선하자’라는 취지로 중도적이다.
좌파와 우파는 국가예산을 보는 시각부터 다르다. 좌파는 국가예산을 공공의 돈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좌파인 공산주의 국가를 생각해 보자. 소득에 따른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고, 국가가 돈을 벌고 국민에게 용돈을 준다. 일하는 사람은 필요에 따라 월급을 받고, 일하지 않은 사람은 연금을 받는다. 소련의 연금에는 세금이 없었지만, 월급에는 10% 내외의 세금이 있었다. 그러나 국민은 월급이 적을 뿐이라고 생각했고, 납세자의 돈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자본주의 국가의 예산은 국민과 기업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된다. 소득이 있는 사람은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까지 세금을 낸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많은 세금을 내며, ‘국가 예산은 납세자의 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세상에는 공공의 돈은 없다. 다만 납세자의 돈이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우파도 많다.
국가예산을 좌파는 공공의 돈이라고, 우파는 납세자의 돈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가예산은 납세자의 돈이라는 인식이 있었을까? 문 대통령이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서 부당하게 예산을 편성하거나, 특별활동비를 사적으로 썼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 납세자의 돈이라는 인식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김의겸의 관저 재테크다. 문 대통령은 김의겸이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었지만, 관사를 제공했다. 비용을 공공의 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공의 일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에게 관사를 제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만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와대 예산이 납세자의 돈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대변인에게 관사를 제공하는 것이 전례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액수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다.
영부인 의상도 마찬가지다. 영부인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의상에 대해서 국가예산 사용에 대한 의심이 있다면, 자금의 출처와 사용 내역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정보 공개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 우파는 그것이 납세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좌파는 공공의 돈을 규정에 맞게 사용했거나, 의상비를 사적으로 조달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문제가 없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여기서 국가 안보 운운하는 것은 사태를 희극적으로 만들 뿐이다.
미국의 퍼스트 레이드와 영국의 총리 부인이 옷을 구매할 때, 국가 예산의 지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비로 살 것이고, 돈이 부족하다면 가족 중에 여유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디자이너 의상의 경우 할인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고, 빌려 입은 후에 돌려줄 수도 있다.
영부인이 고급 브랜드나 유명 디자이너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야 국격이 사는 것도 아니다. 영부인은 자리로 빛나지 옷으로 빛나지 않는다. 영부인이 일본 총리 부인 접견 시에 입었던 유니클로 옷을 영국 총리 부인과의 미팅에서 또 입었다고 해서, 그것을 모욕이라고 느낄 영국인은 한 명도 없다.
영부인이 행사 때마다 다른 옷을 입고 나오는 이유가 ‘우리나라 패션업계의 발전을 위해서 자기 돈을 기꺼이 쓰겠다’라는 것이라면, 그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리고 매번 다른 옷을 입는 것이 본인의 패션 철학이라면, 자비로 샀다는 전제 하에 국민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자비로 샀다고 하면, 자금 출처와 지급내역을 증빙하면 된다. 그것을 프라이버시라고 한다면,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숙명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배우자 의상 중의 일부를 국가예산에서 지원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내외는 많은 행사에 참여하며, 각 행사에는 고유한 드레스 코드가 있다. 대통령 취임 전이나 퇴임 후에 이러한 의상을 입을 일이 없다면, 모든 의상을 사비로 부담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 예산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예산 지원을 받아 구입한 의상을 퇴임 후에 가져갈 것인지, 놓고 갈 것인지에 대한 규정도 잘 정의되어야 한다. 가져간다면, 형식적으로라도 의상의 가격을 지불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왜냐면 그것은 공공의 돈이 아니고 납세자의 돈이기 때문이다. 그걸 공공의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것은 납세자의 돈이기 때문에 공개하라는 사람의 주장은 그것이 공공의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익을 어떠한 형태로도 침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문제에는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한다.
투명한 공개!
그럴 리 없겠지만, 규정을 어긴 부분이 있다면, 그에 대해 책임을 지면 된다. 설령 규정을 어겼다고 해도 전임자의 관례를 따랐을 가능성이 높아서, 책임이 클 것 같지 않다. 규정이 미비하다면, 개선하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내 경우에 이러한 주장에 어떠한 정치적 의도가 없다.
이러한 주장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도덕적 비난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사비로 샀더라도 금액이 크면 국민에게 위화감을 준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문 대통령을 다른 대통령보다 훨씬 도덕적인 대통령으로 생각한 자신의 기분 탓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