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목련화를 보며 역사를 생각하다
이맘때 런던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벚꽃이고 다음으로 많은 것이 목련이다. 벚꽃과 목련은 등나무 꽃이 활짝 필 때까지 런던의 거리를 책임진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큰 목련이 있었고, 나는 목련이 좋았다. 런던 집에도 꽤 큰 목련이 있다. 침실 창문에서 보면, 활짝 핀 목련화가 손에 잡힐듯하다. 낭만적이다.
오늘은 목련 밑에서 목련화 비를 맞으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일을 했다. 저녁에 떨어진 목련 꽃을 치우고 사진을 찍는데, 우리 집에 옥탑방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손님이 머무는 곳인데, 코로나로 한동안 잊힌 공간이 되었다.
저곳을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제공하면, 어떨까?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자신의 집을 제공하겠다는 영국인이 15만 명을 넘었다. 영국은 약과다. 폴란드와 독일 등지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대하는 모습에는 비장한 감동이 있다.
푸틴과 루카센코가 지난해에 이라크와 시리아 난민을 폴란드 국경으로 보내서 EU를 곤경에 빠트린 적이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을 때,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것이고, 난민 문제로 유럽은 분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이번 전쟁의 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많은 나라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우크라이나 난민은 시리아나 다른 지역 난민과 달리 유럽 전역에서 왜 열광적인 환영을 받을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의 전개다.
뿌리 깊은 반미 감정을 가진 우리나라 지식인 몇몇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선악의 관점에서 보지 말 것을 권유하며, 잘난 척이 과한 몇몇의 유튜버는 당위의 관점이 아니라 현실주의적 관점으로 지정학적 운명을 보라고 말한다. 그들이 보는 것이 역사일지는 모르나,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역사는 살아 있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모든 유럽인에게 2차 대전을 떠올리게 했다. 2차 대전은 인류 역사의 어떤 전쟁보다 선악의 관점에서 판단이 쉬웠다. 많은 사람에게 선이 어디에 있고, 악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했다. 전쟁이 끝나고 77년이 지났지만, 악의 편에 섰던 후손 어느 누구도 그게 악이 아니었다고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선악의 관점에서 일방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2차 대전을 떠올리는 유럽인은 난민이 되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한다. 1600km를 혼자 걸어서 폴란드로 간 어린아이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아프리카에서 독일까지 걸어간 아버지를 떠올린다. 여유가 있다면, 자신의 집을 제공하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연설하겠다고 한 것을 우리나라 정부가 거절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피난민 문용형과 강한옥은 1951년에 흥남에서 미군의 배를 타고 철수하여 거제도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1953년에 문재인을 낳았고,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이 그런 판단을 한 것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우리 대통령께서 어떠한 현실주의적인 판단을 한 것인 지는 알 길이 없으나, 대통령께서 역사를 느끼고 있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와이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하얀 목련처럼 보였다. 요 며칠 아침에 우리 부부를 깨우는 것은 아이폰의 알람이 아닌, 창문으로 들어오는 목련화의 하얀빛이다. 나는 그녀와의 역사를 잘 기억하는 공로로 목련화가 한창인 요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