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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r 24. 2022

내게 다가올 시간을 힘겹게 만드는 사람

내게 다가올 시간을 힘겹게 만드는 사람

(러시아 채무 불이행과 금융위기의 역사 시리즈 5)

  

  

러시아 정부는 3월 16일에 해외 채권자에게 지불해야 할 1 400억 원의 이자를 미국 달러로 런던에 있는 시티은행에 입금했습니다. 러시아가 외화 채권을 디폴트 낼 것이라는 것은 기우였습니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은 이보다 앞선 지난 3월 7일에 1.5조 원을 달러로 변제했습니다.


푸틴은 서구의 금융제재로 인해 채권 이자와 원금을 달러로 갚을 수 없고, 루블화로 갚겠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뻥 카드에 불과했습니다.


다가오는 3월 31일에는 7 300억 원의 이자를 지급해야 하며, 4월 4일에는 2.4조 원의 원금을 상환해야 합니다. 이 금액도 모두 루블화가 아닌 차입 외화로 갚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 정부와 기업이 가진 대외 채무는 총 180조 원입니다. 그중에 러시아 정부의 외화 채무는 48조 원에 불과합니다. 러시아 정부의 외환보유고가 750조 원이며, 그중에 2/3이 동결되어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249조 원 정도는 동결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입니다. 보통은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도 서방 선진국에 예치하지만, 러시아는 금을 직접 보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달러 현금도 꽤 있을 것입니다. 빚 갚는 데에 금이나 달러 현금을 쓸 수는 없겠으나, 채무의 절대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상환에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경제 제재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러시아가 현재 접근 가능한 외화가 큰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정전 협상에 동의한다면, 경제 제재의 해제를 러시아는 테이블에 올리겠지만, 서방은 이 전쟁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러시아의 요구를 일축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원유와 가스를 무기로 내걸고 있지만, 러시아 원유와 가스는 중동의 원유와 가스로, 원자력과 그린 에너지로 대체될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러나 러시아가 서방을 대체하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빠를까요? 서방이 러시아의 원유와 가스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빠를까요?


러시아는 중국과의 단일 시장, 단일 화폐라는 꿈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중국에게 러시아는 얼마나 필요할까요? 우리는 러시아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러시아 인구는 일본의 인구보다 조금 많은 정도입니다. 러시아의 GDP 규모는 한국보다 한 단계 낮은 세계 11위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러시아를 얻고, 나머지 세계를 잃는 희생을 중국은 왜 선택해야 할까요?



러시아는 러시아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서구가 필요하고, 서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금융시장에서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도 해외 채무를 성실하게 변제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 시장은 철저하게 tit for tat이어서 직전에 갚은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주고, 갚지 않은 사람에게는 빌려주지 않지만, 이번에는 갚는다고 해서 다음에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 같지가 않네요. 여러 가지로 러시아에 불리한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 대외채무 불이행과 금융위기 시리즈를 마무리하는데, 왜 그렇게도 에즈원의 ‘원하고 원망하죠’라는 노래가 머릿속을 맴도는지 모르겠네요. 시진핑 주석이 푸틴 대통령에게 들려주는 노래 같아요.


소리 내어 환히 웃을 때도

그대 가슴은 울고 있는 걸 느끼죠

그런 그댈 끌어안아 주고 싶지만

이런 내 맘 들키지 않기로 한걸요


원하고 원망하죠 그대만을

내게 다가올 시간을 힘겹게 만드는 사람

그대 지난 날들을 그대의 아픈 얘기를 모르고 싶은걸


지금 그대는 빈자릴 채워줄 누구라도 필요한 거겠죠

잠시 그대 쉴 곳이 되어 주기엔

나는 너무나 욕심이 많은 걸


원하고 원망하죠 그대만을

내게 다가올 내일을 후회로 만드는 사람

이런 내 맘을 혼자서 얘기할게요

그댈 너무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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