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이 깊기에 산이 높다(2008년 러시아 금융위기)
(러시아 채무 불이행과 금융위기의 역사 시리즈 4)
러시아가 제정러시아와 소련의 빚을 생각보다는 많이 갚았지만 다 갚지는 않았다. 러시아는 1998년 금융위기를 모라토리움이라고 표현하며, 디폴트라는 단어의 사용을 꺼렸다. 디폴트도 기술적인 디폴트며, 실제적인 디폴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침략을 전쟁이 아니고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냥 자기들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고, 다 갚았다면 갚은 것이다.
1998년 러시아 디폴트는 금융시장뿐 아니라 국제질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푸틴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 1998년 러시아 디폴트 때문이다. 푸틴이 등장하면서 공교롭게도 세상은 드라마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IT 붐으로 인해 글로벌 유동성이 크게 증가했고, IT 붐이 꺼지면서 그 유동성은 원자재 시장으로 유입되었다. 2000년에 20달러였던, 오일 가격은 2008년에는 147달러까지 올랐다.
이러한 원자재 가격 랠리가 없었다면 러시아 경제는 침체를 이어갔을 것이다. 1998년 디폴트를 기억하는 글로벌 금융시장은 러시아에는 절대로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 했다. 금융시장은 바로 직전의 행동을 잘 기억하여 반응한다.
원자재 가격 랠리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경제는 최악의 위기에서 최대의 호황으로 급반전되었다. 99년에 3천만 원에 산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내 중심부 집을 8년 만에 30억 원에 판 한국인도 있다. 100배의 이익을 거둔 것이다. 런던의 부동산은 8년에 2배가 된다고 하는데, 8년에 100배란 것이 상상이 가는가? 2000년대 초반에 삼성물산이 손절을 하고 나간 카작므스라는 기업은 이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시가 총액 20조 원을 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호텔값이 가장 비싼 곳은 모스크바였다. 당시에 모스크바와 알마티에서 있다가 런던에 가면 모든 것이 껌 값으로 보일 정도였다. 첼시 축구팀도 껌 값이었고, 헴스테드에 있는 대형 맨션도 껌 값이었다.
2007년에 미국에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고 신용경색이 시작되었지만, 2008년 여름까지 원자재 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2008년 9월에 리만 브라더스가 무너지면서 글로벌 신용이 일순간에 경색되었고, 150불에 육박하던 오일 가격은 네 달만에 40불을 깨고 내려갔다. 당시 자원 기업은 석 달만에 주가가 1/15토막이 났고, 러시아 루블은 35% 가치가 하락했고, 루블화를 방어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3860억 불의 외환보유고 중에 1760억 불을 단기간에 사용했다.
원자재의 장기 호황의 결과로 러시아는 충분한 외환보유고가 있었고, 1998년 디폴트로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기에 대외 채무도 얼마 없었는데,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는 왜 러시아를 강타했을까? 러시아가 외환 보유고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러시아 재벌이 개인 금고에 얼마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국제 원자재 가격은 글로벌 유동성과 향후 경기 전망에 의해 결정되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직전 위기에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고려하에 시장 대응에 나선다. 그래서 국제 금융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들은 98년을 생각하며 러시아 자원 기업의 주식을 던지는 데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바닥이 깊으면 반등도 높은 법이다. 원자재 가격도 일시 반등했고, 러시아 및 카자흐스탄 자원기업의 주가도 6개월 만에 다시 10배가 올랐다. 새롬기술을 27만 원에 사서 1만 원에 판 기억이 있던 나는 주식거래 입문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10배라는 수익률을 카작므스 주식에서 달성해 보기도 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산이 높기에 골이 깊은 것이 아니고, 골이 깊기에 산이 높은 것이다. 지금은 다시 유가가 고공행진이지만, 이년 전에 유가는 마이너스 20달러도 갔다. 이번에도 스마트한 투자자들은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시장과 달리 부동산 시장은 지속적인 하락과 침체를 이어갔다. 자원 가격의 고공행진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지역의 부동산 거품을 일으켰고, 거품이 꺼지면서 러시아 및 카자흐스탄 은행이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2008년의 위기는 러시아 정부의 디폴트 위기가 아니고, 러시아 은행의 위기였다.
부동산 가격 하락과 은행의 부실화는 두고두고 러시아 및 카자흐스탄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2007년에 한국의 삼부토건이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내에 1천억 원을 주고 산 땅이 있었다. 삼부토건은 그 땅을 8년이 지난 후에 100억 원에 팔고 나갔다. 그 땅이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정도에 해당하는 노른자 땅이었기에 그나마도 건질 수 있었다. 이번 대선에서 이슈가 되었던 삼부토건이 사실상 맛이 가기 시작한 것도 카자흐스탄 때문이었다. 같은 시기 국민은행은 2008년에 1조 원을 투자한 카자흐스탄 BCC 은행을 전액 손실처리하고, 8년 만에 무일푼으로 철수했다.
1998년의 교훈을 깨달은 러시아는 2008년에는 얼마 안 되는 대외채무를 성실하게 갚았다. 이런 노력을 가상하게 여긴 국제 금융시장은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껴 앉으려고 했으나, 2014년에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여 크림반도를 병합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의 8년은 마지막 편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금융시장에서는 왜 이렇게 8년이 중요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