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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l 04. 2022

탑건, 미국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London Life

탑건과 국뽕

  

  

큰 아이는 단 하루도 한국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국뽕이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영국계 학교인 헤일리베리 알마티를 올리가르히 자녀와 함께 다니면서 방어 기제로 국뽕이 생긴 것 같다. 7학년 때인가 여름에 민족사관학교 캠프를 다녀온 영향도 있다. 영국에 와서 조금 변하여 지금은 국뽕과 영뽕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아이는 카자흐스탄에서 헤일리베리 스쿨과 영국에서 시티 오브 런던 스쿨을 다녔다. 총 13년간의 브리티시 스쿨 생활을 지난주에 마쳤다. 영국의 학교는 전통적으로 졸업식이 없다. 요즘은 학교에 따라 간소하게 졸업식이라고 불릴만한 행사를 하는 모양이다. 큰 아이 학교는 그런 비슷한 행사도 없어서 이제 부모로서 그곳을 다시 가 볼 일이 없게 생겼다. 런던에 관광객이 오면, 아이 학교를 늘 지나가는데, 이제는 지난 세월이 아쉬워 서글플 것 같다.


큰 아이는 6월 내내 A레벨 시험을 보았다. 영국 대학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시험인데, 미국 대학 입학생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시험이다. 그래도 마지막 시험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올해 시험은 상당히 어려웠다고 하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비롯한 영국 대학을 갈 학생 중에는 시험 후에 눈물을 보인 친구도 있다고 했다. 영국이 대학은 A레벌 결과가 나오기 전에 합격자 발표가 되는데, 그 합격이 모두 조건부 합격이기 때문에, 입학 조건을 채울 수 없을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A레벌은 상대평가기 때문에 어려웠다고 성적이 잘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시험 결과는 8월에 나오는데, 그것이 결국은 학위가 된다. 왜 영국 고등학교에 졸업식이 없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은 학위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졸업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8월에 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6월 말에 시험이 끝나고 모두들 전 세계로 흩어지기 때문에 8월에 졸업식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아이는 13년 영국 학제를 뒤로 하고 미국으로 간다. 그가 미국 대학을 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하버드에서 박사를 받은 아빠 친구의 영향 때문이다. 아빠 친구의 지도교수가 하버드대학 교수로 있다가 현재는 임페리얼대학 교수로 있는데, 미국 대학생과 영국 대학생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미국 대학생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느냐, 어떻게 혁신 기업을 만드느냐, 어떻게 큰돈을 버느냐를 고민하는데, 영국 대학생은 이번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오느냐, 성적을 어떻게 주느냐,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느냐에 관심을 가진다고 답했다.


미국에 가는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고, 어느 정도 미국뽕을 심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이자 형과의 작별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부로 탑건을 같이 보았다.


곧 나오게 될 책에 터키 국제정치학자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소련에서 나고 자라서 친러시아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현 국제정치의 여러 문제에서 미국 책임을 많이 주장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문화적으로 어떠한 매력도 우크라이나인에게 보여주지 못했고, 앞으로도 보여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의 본질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러시아가 하드파워를 사용하는 것은 러시아에게 소프트파워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탑건을 보면 미국의 성조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에 가득하지만, 반미 헤게모니 속에서 대학 생활을 보낸 내 눈에도 촌스럽다는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멋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이들보다 내가 더 미국뽕에 빠진 것 같다. 톰 크루즈 왜 이렇게 멋있냐?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7살 막내에게 물었다. ‘예준이는 영화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 ‘그들이 연습한 보람이 있어 좋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멋있었고, 함께하는 팀워크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이 정도면 교육용으로도 최고 아닌가? 조심스럽게 미국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들이 미국 군인이잖아! 미국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어?’ ‘영화 중간중간에 백그라운드로 미국 국기가 나오는데,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고 영국에서 자란 아이는 오늘 처음으로 영화를 통해 미국을 만났다. 그런데  영화가 마침 미국이 하드파워를 소재로  소프트파워였다는 것이 공교롭다. 아이는 형이 멋진 나라로 가서 공부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형과의 작별에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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