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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l 10. 2022

테니스와 국제정치, 윔블던의 승자는 누구인가?

London Life

테니스와 국제정치, 윔블던의 승자는 누구인가?

  

  

1.

테니스에서 The Championship 우승이나 골프에서 The Open 우승은 남다르다. 남다름은 최초라는 역사성에서 온다. 그러나 그 우승은 까다롭다. 잔디코트에 익숙하지 않은 선수는 윔블던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가 어렵다. 과한 의욕으로 뛰다가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인랜드 골프 코스에 익숙한 선수가 스코틀랜드 링크스 골프 코스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인랜드 골프와 링크스 골프는 다른 종목의 스포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을 준용하면, 잔디코트 테니스와 하드코트 테니스는 다른 종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러시아 선수는 실내 종목 테니스에 강하다. 겨울이 긴 러시아는 골프와 같은 야외 종목에 약하다. 러시아에도 골프장이 있지만, 누가 러시아 골프 선수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러시아 테니스는 하드코트 테니스다. 남자 선수로 예브게니 카펠니코프와 마랏 사핀이 있었으며, 지금은 다니엘 메디베데프가 있다. 그랜드 슬램에서 우승한 선수는 여자가 남자보다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 윔블던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윔블던을 우승한 선수는 남녀 통틀어 마리아 샤라포바가 유일한데, 그녀는 사실상 미국인에 가까웠다.

 

3.

테니스 대회에서 3, 4라운드까지 올라가는 선수를 국적별로 보면 남녀를 불문하고 러시아 선수가 가장 많다. 국가 대항전인 데이비스 컵에서도 러시아는 항상 좋은 성적을 냈다. 세계랭킹 1위인 메드베데프를 포함하여 상위 랭커에 포진된 러시아 선수만 5명이 된다. 러시아 국적은 아니지만 즈베레프, 치치파스, 샤포발로프 등도 러시아와 강한 연계를 가지고 있다. 치치파스의 어머니는 한국의 전미라처럼 주니어 시절에 러시아를 주름잡았던 선수였다. 주니어 선수 중에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도 많다. 스포츠에 국가 관여가 많은 러시아는 테니스를 적극 후원하지만, 러시아 정부로부터 관리를 받는 엘리트급 선수가 되는 곳은 쉽지 않다.


4.

좋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후원자를 찾기 어려운 선수들이 있다. 2008년부터 그들을 불러 모은 나라가 카자흐스탄이다. 카자흐스탄 테니스협회장은 우리나라의 이재용 같은 볼랏 오테무랏이다. 그는 테니스광이면서 카자흐스탄 제1 갑부다. 학업, 코칭, 투어 등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러시아 1.5진 선수의 국적을 카자흐스탄으로 바꿨다. 최근에는 카자흐스탄 선수들의 선전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러시아 선수를 영입하면서 일 년에 1백만 달러 정도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으로 국적을 바꾼 선수는 모두 지원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5.

윔블던은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의 참여를 금지시켜 논란을 자초했다. 러시아 선수가 윔블던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불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국인의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참여만 해도 9천만 원 상금을 받는 대회에 러시아 선수를 초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영국인의 감정이었다. 덕분에 우크라이나는 영국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 좋아하게 되었다. 영국은 윔불던으로 우크라이나인의 마음을 샀다. 이것이 소프트파워의 훌륭한 사례다. 대신에 핵 공격을 한다면 그 어디보다 먼저 런던을 타격하겠다는 소리를 러시아로부터 들었다. 소프트파워를 부수겠다는 하드파워의 안쓰러운 아우성이다.


6.

문제는 여자 단식에서 엘레나 리바키나가 우승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것을 프로파간다로 활용할 것이다. ‘윔블던은 러시아 선수를 금지시켰지만, 우승한 것은 러시아 선수다.’ ‘영국 왕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러시아 선수에게 우승 접시를 선사했다.’ 이번 여자부 결과는 윔블던이 원하지 않았던 결과임은 분명하다.



7.

리바키나는 러시아 선수인가? 러시아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러시아에 살고 있다. 아마 카자흐스탄은 일 년에 몇 번 대회에 참여하러 가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녀가 지금 러시아 연계를 말할 이유는 없지만, 그녀가 사실상 러시아 선수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녀는 마리나 샤라포바보다 더 러시아인에 가깝다. 최초의 윔블던 우승이라는 타이틀도 그래서 마리아 샤라포바보다는 엘레나 리바키나에게 가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될 정도다.


8.

러시아가 보는 눈이 없어 지원하지 못했던 선수를 이제 와서 자기 선수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양 빠지는 일이다. 그녀가 카자흐스탄 지원을 받으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당연히 그녀는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전시라는 상황을 감안하여 이것을 프로파간다의 소재로 삼으려는 유혹이 러시아에 있을 것이고, 그럴수록 엘레나 리바키나는 도망칠 것이다. 그녀에게 광고가 필요하고 그녀에게 글로벌 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9.

사실상 러시아인의 윔블던 우승은 러시아 스포츠에 좋은 일인가? 그렇지 않다. 러시아 테니스는 이번 윔블던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기가 쉽게 이겼던 선수가 윔블던에서 우승했고, 자신은 윔블던에 나가지 못했다. 러시아 선수는 국기나 국가도 사용할 수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고, 어디를 가도 눈치를 보는 상황에 처했다. 젊은 러시아 선수의 국적 이탈은 속속 나타날 것이다.


10.

문제는 이러한 국적 이탈이 스포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 젊은 남성이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인근 나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국적 이탈자 중에 젊은 남성이 특히 많은 것은 전쟁 징집을 염두한 포석이다. 일반인도 그럴진대, 글로벌 무대를 대상으로 활동해야 하는 음악가, 미술가, 발레리나, 작가 등은 더욱 그렇다. 젊은 프로그래머와 기업가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팬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 선수는 말할 것도 없다.


11.

러시아 국적 이탈자 중에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위대한 러시아의 소재로 삼는다면, 그것은 아주 모자란 짓이 될 것이다.


12.

이번 윔블던 승자는 러시아가 아니라 카자흐스탄이다. 엘레나 리바키나 가족 코치 석에는 동양인 남자 두 명이 있었는데 그중에 윔블던식 양복을 입고 있던 중년 남성이 볼랏 오테무랏이다. 자신의 후원한 선수가 윔블던에서 우승한다면, 그 또한 어찌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부자 3락에 포함될 일이다. 여자부의 승자는 카자흐스탄이다. 이제 남자부를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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