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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ug 12. 2022

떠나는 것의 어려움, 그리고 이름을 가져오는 이유

London Life

떠나는 것의 어려움, 그리고 이름을 가져오는 이유

  

  

1.   영화 벨파스트에 보면 첫 장면에 타이타닉 호텔이 나옵니다. 그리고 배를 만드는 거대한 조선소 시설도 나옵니다. 얼마 전 벨파스트를 방문한 페친의 포스팅을 보니 타이타닉 호가 벨파스트에서 건조되었다고 하네요.


2.   영화를 보면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옵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벨파스트를 떠나서 런던으로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지 나옵니다. 3자가 보기에는 하나도 어려운 결정이 아닌데 말입니다.


3.   타이타닉 영화는 떠남과 관련한 영화입니다. 영국의 사우스햄튼을 출발하여 뉴욕으로 가는 배에는 떠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4월에 영국 남해안을 출발하여 뉴욕에 가는 배가 중간에 빙하를 만났어요. 얼음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영국 남해안에서 뉴욕을 가려면 계속 내려가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기이한 일입니다. 떠나면 예기치 못한 일을 만나게 됩니다.


4.   어제 런던에서 워싱턴 DC로 왔습니다. 만나는 지명은 모두 익숙한 지명입니다. 영국과 유럽 대륙을 떠나 온 사람들은 신대륙에 와서 이곳에 자신들이 살던 마을 이름을 붙입니다. 미국 동부의 지명은 그렇게 대부분 영국 지명 그대로입니다. 영국의 아주 작은 동네 이름까지도 미국 동부에서 만나면서, 떠나온 사람 마음이 전해집니다. 벨파스트를 떠나 런던에 간 영화 속 주인공도 가능하기만 했다면 그렇게 자신의 동네 이름을 런던에 가져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5.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라는 책의 4교가 끝났을 무렵에 전화가 하나 걸려 옵니다. 책의 1 장을 장식하고 있는 중요한 인물에게서 온 전화였습니다. 그녀의 동생이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원고가 끝났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세인트 앤드루스에 있었습니다. 급하게 차로 가서 그녀와 화상 통화를 했습니다. 그중에 저는 참으로 민망한 질문을 했습니다.


6.   17세의 그녀는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고 불안한 상황에 살고 있었습니다. ‘왜 우크라니아를 떠나지 않았는가?’ 그녀의 답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놀랍기도 했습니다. ‘떠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질문이 잘 못 되었습니다. 순간 당황했고, 영화 벨파스트가 생각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떠남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7.   그런 질문을 한 것은 우크라이나를 떠나 런던에 온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 엄마와 13세의 남자아이를 동네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남자아이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수준이었고, 듣는 것에 물리적 장애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영어를 떠듬떠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어는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8.   이들이 난민으로 와서 덜위치 지역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네에 있는 중고등학교인 덜위치 컬리지를 보게 되었고, 건물의 아름다움에 끌려 학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서울에도 덜위치 컬리지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강남에 작게 위치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런던 남부에 위치한 덜위치 컬리지는 장담하건대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이며 가장 품격 있는 학교 중의 하나입니다. 입학도 어렵고, 학비도 4천만 원이나 합니다.


9.   그 학교에 들어가서 뚤래뚤래 하니까 학교 경비가 ‘도와줄 것이 있냐?’고 묻습니다. 말이 그런 것이지, ‘왜 왔어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난민이라고 하니까 학교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합니다. 학교 구경을 하고 나서 엄마가 떠듬떠듬한 영어로 ‘이 학교에는 어떻게 입학할 수 있냐?’라고 묻습니다. 그냥 물은 것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학교를 구경시켜 준 경비가 무턱대고 아이 엄마와 아이를 교장실로 데려갑니다. 당황한 교장이 그들과 10분간 대화를 하고 바로 결정을 내립니다. ‘다음 주부터 우리 학교에 다니세요.’ 물론 학비는 전액 무료고, 교복과 점심 값과 수업 후 활동까지 모두 무료입니다. 떠남에는 이런 예기치 못한 선의와의 만남도 있습니다.


10.   그 아이의 이야기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 강한 인상으로 인해 우크 라이에 남은 17세 여학생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왜 떠나지 않았는가?’ 그 질문에는 네가 떠났다면 너에게는 놀라운 기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암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기적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설령 누구에게나 일어난다고 해도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1.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는 블루 호프라는 다이아몬드가 있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여자 주인공이 마지막에 바다에 빠트리는 그 다이아몬드입니다. 그 다이아몬드를 어서 가 봐야겠습니다. 벨파스트를 생각하고, 우크라이나를 생각하는 대서양 횡단이었습니다.


12.   떠나기 위해서 태어난다는 아일랜드 사람에게도 떠남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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