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영국과 한국이 비슷한 여덟 가지 문제
한국 언론은 영국이 망할 것처럼 말하지만, 영국과 한국이 비슷해 보이는 것이 많다. 지도자에서 시작하여 갈등의 양상까지 그리고 이자율과 환율도 비슷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에 와서 리즈 트러스 총리를 만나지 않고 갔는데, 참 잘한 일이다. 만났으면 서로 깜짝 놀랐을 것 같다.
하나. 놀랍도록 낮은 정권 지지율
리즈 트러스는 새로운 총리가 되었지만, 놀랍도록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노동당 50%, 보수당 30% 지지도인데, 그나마 보수당 절반 이상은 트러스를 신뢰하지 않는다. 임기 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가? 영국은 그나마 선거로 뽑힌 총리가 아니니까 그런가 싶지만, 한국은 선거로 뽑힌 대통령인데도 임기 초기 기록적으로 낮은 지지율 상태다. 지지도 20대 초반이라면 영국보다는 조금 높다. 그걸로 위안을 삼자.
둘. 콘텐츠가 없다
리즈 트러스는 마가렛 대처의 트랩에 갇혀 있다. 매사에 마가렛 대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의 콘텐츠가 없다. 감세는 좋지만, 감세로 인해 비는 곳간을 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할 생각이었다. 말만 대처지 실제 내용은 대처랑 같지도 않다. 작은 정부를 말했던 윤석열 정부는 그 말을 잘 지키겠지? 공무원을 늘린다는 뉴스는 설마 대통령 국정철학을 이해 못 한 사람들의 허튼짓이지?
셋째. 언론과의 불화
중앙은행은 긴축 정책을 펼치면서 정부는 확장 정책을 펴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지금 미국도 그런 측면이 있다. 그것을 영국만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에는 언론의 호들갑이 한몫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시절에 내각과 BBC 대립이 내각과 언론의 대립으로 확대되었고, 보리스 존슨은 그걸 버티지 못했다.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전통 언론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을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유튜버는 기존 언론을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보리스 존슨은 물러 났지만, 정부 정책은 그대로고 대언론 정책도 그대로다. 언론이 리즈 트러스와 밀월 관계를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 권력은 언론 도움 없이 성공하기 힘들다. 영국은 그나마 시청료 문제로 싸움이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언론과 싸울 일 자체가 아니었다.
넷째. 금리 인상과 환율 불안
미국이 빅스텝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금리차가 1%나 되어 자금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빠져나갈 것이 우려되는 차에 새로 총리가 된 리즈 트러스는 감세안을 발표하여 정부 재정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러한 조치는 울고 싶은 사람의 뺨을 때려준 격이어서 투자자는 영국 채권을 팔았고 그 돈은 미국으로 빠져나갔다. 달러 환율은 역사적 최저점인 1파운드에 1.03까지 빠졌다. 한국과 영국은 금리 수준이 비슷하고, 인상 속도도 비슷하여, 미국과의 금리차도 비슷한 수준이고, 환율 하락폭도 비슷한 수준이다.
다섯째. 서민을 돌보지 않는다
금리를 올리면 서민은 고통받지만, 돈이 있는 사람은 혜택을 받는다. 급격한 금리 인상 국면에서 상황에 따라 확장 정책을 쓸 수도 있다. 금리는 중앙은행이 결정하지만 재정은 재무부에서 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리로 인해 서민의 고통이 정점인대, 최고 소득자에게 감세 혜택을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최악의 감세 타이밍이다. 리즈 트러스의 마가렛 대처 코스프레 때문에 많이들 고생한다. 리즈 트러스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은 학자 아버지를 둔 중산층 출신이다. 한국 대통령은 그나마 소주 마시며 서민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리즈 트러스는 그런 것도 하지 않는다.
여섯째. 서민을 돌 볼 수가 없어서 결국은…
금리를 올리면 서민이 고통받지만, 금리를 올리지 않고 환율이 폭락하면 모두가 고통을 받는다. 이럴 때 선택은 정해져 있다. 금리는 인상된다. 매를 맞기 전에 올리느냐, 맞고 나서 올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에 따른 정치적 후폭풍도 정해져 있다. 정권 교체다. 정권 교체 가능성도 비슷해 보이고, 정권 교체를 이야기하기에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은 것도 비슷하다.
일곱째. 주택 가격 불안정
한국과 영국이 비슷한 것 중의 하나가 가계부채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이 조금 더 높다. 영국은 모기지 대출 중에 당장 금리 상승 영향을 받는 건수가 전체의 1/4 수준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그보다 더 많을까? 많다면 가계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며, 부동산 가격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영국은 코로나 시국에 부동산 급등이 없었기 때문에 시장 변동성 측면에서 한국보다는 그나마 나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 상승으로 인해 적게는 10%, 많게는 20% 하락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이미 10% 빠졌는데, 여기서 더는 크게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여덟번째. 반대자의 말을 듣자
리즈 트러스는 확장적 재정 정책의 일부인 감세안을 철회했다. 늦게나마 여론에 귀를 기울였다. 영국 정치의 장점은 U턴을 잘한다는 것이다. 그걸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 GBP:KRW는 1:1618이 되었다. 이제 우리도 좋은 수를 하나 두던지, 창피함을 무릎 쓰더라도 수를 하나 물리든지 하자. 그런데 무슨 수를 물리지?
생각해 보니 아니다! 어쩌면 만나서 상대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았어야 했다. 그럼 이제라고 빨리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