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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Oct 25. 2022

한국 정치 이야기가 아닌 영국 정치 이야기

London Life

한국 정치 이야기가 아닌 영국 정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조금은 기묘하고(a bit weird), 이상하게 공허하며(curiously hollow), 잠재적으로 위험하다고(potentially dangerous) 생각한다. 불안정한 리더가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리더를 제어하기 위해 정부는 많은 노력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정부는 품위를 잃을 것이다.’


메튜 패리스 정치 평론가가 지난 8월 19일에 리즈 트러스가 총리로 유력해지자, 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그러므로 이것은 한국 이야기가 아니라 영국 이야기다. 리즈 트러스가 총리가 된 지 44일 만에 그의 글은 성지가 되었다.


영국에 살면서 웬만하면 영국을 좋게 보려고 노력한다. 영국 정치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브렉시터였던 나이젤 파라쥐(Nigel Farage)에게도 귀담아들을 주장이 있었고, 보리스 존슨 전 총리에게도 존경스러운 점이 있었다. 테레사 메이 전전 총리에게도 진정성과 설득력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즈 트러스에게서는 장점을 찾기 어려웠다. 이상하며, 공허하고,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역사 속에 살다>


1827년에 조지 캐닝이 119일 만에 사망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난 적이 있다. 역대 최단기간 총리다. 리즈 트러스는 최단기간 재임 기록을 63% 단축하여 44일 만에 사임한 총리가 되었다. 1827년 119일이라는 역사는 이제 2022년 44일이라는 역사로 새롭게 써졌다.


<그녀만의 잘못은 아니다>


이것이 그녀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녀가 공허했던 것은 사실이나 공허하지 않은 총리라고 하더라도 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연속되면서 높은 인플레이션과 급격한 금리 인상이 있었다. 자유를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전염병과 전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누구도 묘수를 찾기는 어렵다. 그녀가 내놓은 정책은 보수당이 생각할 수 있는 정책이었다. 정책에 모순이 있었지만,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그러한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어려운 환경에서 불운했고, 시장의 반응을 예측하지 못한 면에서 무능했다.



<더 기묘할 수도 있다>


다음 총리는 누가 될 것인가? 이번 사태로 두 명의 정치인이 부활하게 되었다. 한 명은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리즈 트러스에게 패한 리쉬 수낙 전임 재무장관이다. 리즈 트러스가 경제 정책에 실패하면서 배신자 낙인은 어느 정도 지워졌다. 다른 한 명은 파티 게이트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보리스 존슨이다. 이럴 것이라면 왜 총리를 바꿨느냐는 여론도 높아졌다. 보리즈 존슨은 물러난 지 44일 만에 다시 몸을 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지금 총리가 다시 된다면, 영국 정치는 더욱 기묘하게 된다.


<차기 총리는 어떻게 결정되나?>


새로운 당대표 선출은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국회의원 100명 이상의 지지를 받은 사람이 후보로 나선다. 보수당 의원은 357명이므로 이론적으로 최대 3명까지만 입후보가 가능하다. 며칠 만에 100명 이상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치인은 지난 당대표 선출 과정에서 2위를 한 리쉬 수낙과 3위를 한 페니 모던트 정도다. 두 명이 입후보하면 다음 주 금요일까지 전당원 온라인 투표로 보수당 당대표를 정한다. 보리스 존슨이 출전하면, 국회의원 투표로 두 명으로 추린 후에 전당원 온라인 투표를 한다. 유력 후보 간에 합의가 이뤄져 한 사람이 단독 입후보해서 총리가 될 수도 있다. 늦어도 다음 주 금요일까지는 총리가 정해진다. 어떻게 해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가 생기는 찜찜함을 남긴다.


<또 틀릴 예상을 해본다>


리쉬 수낙과 페니 모던트가 연합하여 어려움을 타개해야 한다. 리쉬 수낙이 총리를 하고, 페니 모던트가 주요 직책을 맡는 구조로 보수당은 분열을 극복하고 리더십 공백을 메꿔야 한다. 페니 모던트가 총리를 하고, 리쉬 수낙이 자율적 권한을 가지는 재무장관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더라도 보수당은 다음 총선에서 노동당을 이기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보수당은 보리스 존슨을 다시 불러낼 것이고, 그가 야당 대표가 되어 재집권을 노릴 것이다. 이것이 영국 정치를 위해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보리스 존슨은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과연 그는 기다릴 줄 아는 정치인일까?


<임기제의 단점 하나>


임기제의 가장 큰 단점은 제아무리 능력이 있고 인기가 높은 리더라고 하더라도 임기가 끝나면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창의적(?) 방식으로, 중국은 구렁이 담넘기 방식으로 임기제 단점을 극복하여 진정한(?) 민주주의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임기제의 단점 둘>


영국 총리의 44일 사임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국민은 이제 덜 기묘하고 덜 공허하며 덜 위험하다고 느낀다. 정부는 리더의 무능과 불안정을 커버하기 위해 헛심을 쓰지 않아도 된다. 임기제의 또 다른 단점 중 하나는 능력도 인기도 없는 대표에게도 임기를 끝까지 보장해 주는 것이다.


기묘하고 공허하고 위험하다는 것은 한국 이야기가 아니고 영국 이야기다. 임기제 단점은 리더가 기묘하고 공허하고 위험할 때 두드러지는데, 영국은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우리는 어떻게든 매일 제도의 한계를 절감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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