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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Oct 25. 2022

인종주의 마지막 벽을 허문 리쉬 수낙에게 행운을

London Life

인종주의 마지막 벽을 허문 리쉬 수낙에게 행운을!

  

   

1.   영국에서 인도인의 위상


[그러니까, 영국] 책에는 ‘영국 사회에서 인도인의 위상’이라는 내용이 있다. 영국에서 인도인 위상이 매우 높다는 것을 한국인 시각에서 분석했다. 이 글이 처음 나왔을 때 여러 반론에 부딪혔다.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생각한 인도인 위상과 그 글이 보여준 인도인 위상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일부 한국인에게 인도는 여전히 천을 두르고 물레를 돌리는 마하트마 간디의 나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인도인 위상은 상당히 높거나 제일 높다. 직업, 급여, 재산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를 첫째로 인도 학생이, 둘째로 중국 학생이, 셋째로 한국 학생이 대표한다.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인도 학생은 좋은 대학에 가며, 졸업 후에 좋은 직장에 취업한다.

  

  

2.   영국의 새 총리 리쉬 수낙은 어떤 사람인가?


리쉬 수낙의 아버지는 펀잡 인도인으로 케냐에 살았고, 어머니도 펀잡 인도인으로 탄자니아에 살았다. 1960년대에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에 이주하여 의사와 약사로 돈을 벌었고, 리쉬 수낙을 영국 최고 사립학교 중 하나인 윈체스터 컬리지에 보냈다. 윈체스터 컬리지는 대부분 학생이 기숙생활을 하지만, 학교 주변에 사는 몇몇 학생은 등하교를 할 수 있다. 윈체스터와 같은 전통을 중시하는 학교는 기숙 학생 중심이다. 리쉬 수낙은 기숙학생이 학생회장을 맡는 학교의 600년 전통을 깨고, 학생회장이 되었다.


옥스퍼드에서 PPE(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학교 다닐 때는 리즈 트러스와는 달리 정치보다는 돈 버는 일에 관심을 보였다. 좋은 매너가 몸에 베여 있고, 친구로부터 두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골드만삭스에 취업하여 금융 커리어를 쌓았다. 옥스퍼드를 졸업하면 골드만삭스에 취업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대학 졸업자가 런던의 골드만삭스나 제이피모건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100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 후에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MBA를 했다. 그때 Infosys 창업자 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3.   타임스가 지지하는 인물 리쉬 수낙


언론이 리쉬 수낙에 대해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며 지원하고 있다. 더 타임스는 시종일관 리쉬 수낙을 총리로 지지했다. 타임스가 리쉬 수낙의 단점으로 꼽고 있는 것은 지나치게 깔끔을 떤다는 정도다. 리쉬 수낙이 언론인 두 명과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어가 주스를 따라와서는 받침대(coaster) 없이 유리잔을 테이블에 놓았다. 이를 몹시 불편하게 생각하던 리쉬 수낙이 상황을 참지 못하고 직접 가서 받침대 두 개를 가져와서 깔아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타임스가 찾아낸 리쉬 수낙의 단점이라고 할 정도이므로, 타임스가 리쉬 수낙에 보내는 애정이 깊다.

  

  

4.   일단은 좋은 출발


골드만삭스 출신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새로운 총리에 대한 금융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노동당 지지 언론은 시비를 걸겠지만, 보수당 성향이나 중도 성향 언론은 일단은 소수민족 출신 총리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높이 받아들여 당분간은 밀월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소수민족을 지지기반으로 생각하는 노동당도 초반에는 눈치를 볼 것이다. 잘못하면 인종주의 오명을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소수민족 지지를 보수당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 정당 지지도에서 노동당에 뒤지고 있는 보수당 입장에서는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5.   중요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높은 인플레이션, 급등하는 금리라는 어려운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비법이 리쉬 수낙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TV토론에서 리즈 트러스는 감세를 주장했고, 리쉬 수낙은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다. 리즈 트러스가 총리가 되고 감세안을 밀어붙이자 금융시장이 놀랐다. 결국 금융시장이 리쉬 수낙 손을 뒤늦게 들어주었다. 그 점에서 리즈 트러스는 억울하며, 리쉬 수낙은 운이 좋았다.


영국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된 것은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영국 정부가 보여준 적극적 재정정책 탓이다. 리쉬 수낙이 재무장관으로 있을 때, 돈을 흥청망청(?) 풀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리쉬 수낙은 재정 건전성 리스크를 잘 알게 되었다. ‘네 잘 못을 네가 알렸다’는 면에서 자기가 한 일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현실을 알고 있는 리쉬 수낙이지만, 그가 쌍둥이 적자를 해결할 묘책을 가지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6. 정통성이라는 커다란 문제


그리고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다. 국민은 그를 총리로 선출한 적이 없다. 그가 진정한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최초의 소수민족 총리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경제 상황이 이어진다면, 보수당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7.   의원내각제의 장점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제도는 합리적이다. 유권자는 어느 당 대표가 총리에 적합한지를 염두에 두고, 지역구에서 정당 후보자에게 투표한다. 의원내각제 장점은 무능이 확인된 리더를 즉각 물러나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포인트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8.   영국식 제도의 단점


총리가 사임하면 집권당에서 당내 투표로 총리를 선출한다. 영국의 경우 다수당 국회의원이 투표로 최종 후보 두 명을 뽑고, 그중에서 전당원 투표로 당대표를 뽑는다. 왜 국가의 리더가 특정 당원에 의해 선출되어야 하는가? 중국 공산당원은 1억 명이라도 되지만, 영국 보수당원은 20만 명도 안된다. 당비를 꾸준히 내는 보수당원의 생각이 여론과 다를 때도 많다. 그들은 비교적 여유로운 백인 남성들이다. 모기지가 없는 자신의 집에서 살며, 이자율이 오르면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다. 왜 그들에게만 리더를 선출할 권한이 부여되는가?

  

    

9.   제도의 한계


총선을 거치지 않고 총리가 되는 경우에 정통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리더십이 취약하다. 야당은 정통성을 위해서 조기 총선을 주장하지만, 여당이 응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 맘에 들지 않는 총리를 여론으로 쫓아내고 나니,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더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리더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일이 지난 몇 개월간 영국에서 벌어졌다. 제도의 한계를 리즈 트러스가 보여주고 44일 만에 물러 났다.

  

총리가 물러 날 때마다 총선거를 할 수 없다면, 집권당원이 아니라 국회의원 전원 투표로 총리를 정하는 차선책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여전히 집권당에서 총리가 나오겠지만, 그렇게 되면 야당도 받아들일 수 있는 후보가 총리가 된다. 그랬다면 보리스 존슨 후임으로 리쉬 수낙이 바로 총리가 되었을 것이고, 리즈 트러스는 44일간의 역사를 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10.   리쉬 수낙은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인가?


지난 7월부터의 일련 과정을 통해 시간을 낭비했고, 모순된 정책으로 금융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유권자 민심과 당원 민심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보수당 국회의원과 당대표 선출 룰을 결정하는 위원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반복하길 원하지 않았다. 3 안에 100명의 동료 국회의원 지지를 받는 후보만 입후보하도록 자격을 엄격히 제한했다. 보수당 국회의원은 당원 투표로  경우에 리쉬 수낙이 또다시 패배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유권자 민심이 리쉬 수낙에게 있는 상황에서 보수당 국회의원은 보리스 존슨이나 페니 모던트에 대한 지지에 미온적이었다.


그렇게 리쉬 수낙이 최초의 소수민족 총리, 최초의 힌두교 총리, 경제를 잘 아는 총리, 젊은 총리라는 수식어를 가진 채 영국의 57번째 총리가 되었다.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으로서 버락 오버마가 있었다. 그는 인종주의 극복의 이정표가 되었다. 리쉬 수낙이 총리가 된 것은 오버마가 대통령이 된 것보다 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오버마는 아프리카인으로 미국에 산 것이 아니라 미국인으로 미국에 살았다. 그는 감리교 신자였고, 스스로를 미국인으로 생각했으며 아프리카인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리쉬 수낙은 영국에서 자란 영국인이지만 인도인이라는 정체성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는 힌두교 신자고, 부모님은 인도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처가는 인도의 대재벌이다.


오버마가 민주당 간판으로 나왔다면, 리쉬 수낙은 보수당 간판을 달고 있다. 한 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집단에서도 유색인종과 소수민족이라는 것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았다. 장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정치력으로 극복했다. 간디를 기차 발판에서 울게 만들었던 나라가 영국이었다. 최근에는 어느 나라보다 인종차별에 엄격했던 영국이지만 보이지 않은 장벽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제 인종차별의 마지막 장애물이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리쉬 수낙이 총리가 된 것에 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잘 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행운을 비는 심정으로 당분간 물이나 주스를 마실 때 컵 받침대를 써 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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