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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Nov 01. 2022

도덕적으로 타락한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다

London Life

도덕적으로 타락한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다

  


우크라이나의 작가 루브코 데레쉬는 [우리는 침묵할  없다]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전쟁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서구의 타락이다. 그러한 것은 인간 사회의 도덕이 침식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적어도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몇몇 유럽 국가는 타락의 관점에서 전쟁을 보았다.’ 그의 말에 동의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관점에서 전쟁을 보는 것이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해보자.

  

  

1.   국익을 위해 교묘한 줄타기가 필요하다는 주장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국이기 때문에 러시아를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강력하다. 특유의 실용주의적 주장처럼 보인다. 교역 상대국으로 배척할 수 없는 범주에는 우크라이나도 포함된다. 외교적인 노력으로 교묘하게 줄타기하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양쪽과 교역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2.   푸틴은 ‘줄타기’ 주장을 지지한다


마침 푸틴은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푸틴의 경고는 교묘한 줄타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푸틴의 협박 때문에 대한민국 국방라인이 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 동부군 전력이 대한민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는 것이 이번 전쟁을 통해 확인되었다. 반면에 외교통상 라인은 푸틴 말에 상당히 긴장했을 것이다. 강대국과 척을 질 것 같은 두려움, 무역 상대방을 잃게 될 것 같은 걱정을 하게 되었다.

  

  

3.   러시아와의 관계는 끝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외교통상 라인도 알고는 있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설령 러시아가 전쟁 전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서구사회는 러시아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점이 그것이다. 러시아가 침략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쟁 과정에서 서구사회 전체를 적국으로 특정했고, 서구사회 전체에게 핵위협을 가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망하듯이 러시아가 철저히 망하지 않는 이상, 핵위협이 유명무실할 정도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서구사회는 러시아를 정상국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EU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풀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를 교역 상대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전쟁이 끝나도 러시아와 의미 있는 규모의 교역을 할 수가 없다. 미국으로부터 이차 제재를 당하고 EU로부터 외면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미 경제적으로 버려진 카드다. 러시아는 향후 몇십 년 안에 우리의 비중 있는 교역국이 되지 못한다.

  

  

4.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우크라이나는 작은 나라가 아니다. 국토면적은 우리나라의 6배가 크며, 인구가 41백만 명이나 된다. 우크라이나 재건에 서구의 막대한 돈이 들어갈 것이다. 2 세계대전 이후에 마샬플랜을 통해 천문학적 자금이 서유럽에 투여된 것처럼 말이다. 유럽을 살리기 위한 마샬플랜처럼 우크라이나를 살리기 위한 작전이 펼쳐진다. 그것이  중요하냐고 하면, 우크라이나가  살게 되면, 그때에 비로소 러시아가 붕괴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서방과의 연대를 통해 경제적 발전을 달성하면, 우크라이나의  서방 정책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된다. 푸틴의 기반인 슬라브주의와 유라시아주의는  곳을 잃게 된다.


5.   주식시장은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 재건에 큰돈이 들어갈 것이란 것을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 증시에는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테마주가 있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6.   폴란드의 한국 무기 구입이 가져온 착각

  

한국전력과 한수원은 폴란드 원자력 발전소 수주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런 착각은 폴란드가 우리나라에서 무기를 구매하기로 결정한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폴란드는 가지고 있는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주었고 전력 공백이 생겼다. 그것을 메꾸기 위해 한국으로부터 대규모 무기 구입을 결정했다. 당장 급한 불이기 때문에 찬밥 더운밥을 가릴 입장이 아니다. 적성국가만 아니면 되었다. 그러한 폴란드 조치를 보고 폴란드가 우리나라로부터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무기를 구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다.


폴란드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하려고 한 것을 중국이 방해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중국은 폴란드가 한국 무기가 아닌 중국 무기를 구입할 것을 희망한 모양이다. 그것은 택도 없는 일이다. 폴란드는 중국 무기를 사지 않는다.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폴란드에게 우방국이라는 인식을 주지 않으면, 폴란드는 한국으로부터 무기를 장기적으로 구매하지 않는다. 텅 빈 무기고를 어느 정도 채우고 나면, 폴란드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7.   폴란드가 한국의 원전을 도입할 것이란 착각

 

원자력 발전소는  무기고처럼 급한 불은 아니다.   안에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이 우방국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한국 원전을 쓰지 을 수 있다. 그렇게 미국의 웨스팅 하우스가 폴란드 원자력 발전소의 사업자로 결정되었다. 추가 사업자 선정을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다 명확한 입장을 보였다면, 수주 가능성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폴란드가 그럴진대 우크라이나는 어떨까? 자기 나라를 진심으로 도와줬던 나라의 물건을 쓰게 되고, 우방국 기업체를 불러와서 재건 사업을 맡긴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은 발전소, 도로 등의 인프라 사업과 전쟁으로 파괴된 주택과 오피스를 건설하는 사업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의 한국을 2000년대의 한국으로 바꾸는 대규모 사업이  것이다. 한국 기업 같은 적임자가 없다. 일을 잘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만큼 빨리 잘하는 기업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일을 빨리 잘한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방으로 신뢰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8.   빨리 정해야 하는 포지셔닝

  

전쟁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우리는 빨리 입장을 정해야 한다. 어차피 의미 없게 되는 무역 상대국의 눈치를 볼 것이냐? 우크라이나 우방국으로 포지셔닝할 것이냐? 무엇이 경제적으로 비지니스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일까?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해야 하며, 러시아와 관계를 단절해야 하며,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외교통상 인력을 상주시켜야 한다.

   

  

9.   전쟁과 재건은 다르지 않다

  

전쟁은 전쟁이고 전쟁이 끝나면 전쟁과 다른 논리가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전쟁을 지휘한 사람이 전쟁 후 재건 사업을 지휘한다. 조지 마샬은 마샬 플랜 당시에 미국 국무장관이었지만, 전쟁 중에는 미국 육군 참모총장이었다. 전쟁을 젤렌스키가 지휘했다면, 전후 복구도 젤렌스키가 지휘한다. 전쟁과 재건은 다르지 않다.


정치와 전쟁도 의외로 크게 다르지 않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 29명이 장군이나 장교 출신이다. 미국 대선 때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 중에는 여전히 군인 출신이 있다. 처칠은 전쟁을 지위한 장교였고, 영국 고위 정치인 중 상당수가 군인 출신이었다. 현 총리는 리쉬 수낙이지만, 리쉬 수낙이 낙마하게 되면 0순위 총리 후보가 벤 웰러스 국방부 장관이며, 다음 후보가 전임 국방부 장관인 페니 모던트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사회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이 오늘의 친구를 내일의 적으로 만들고, 오늘의 적을 내일의 친구로 만드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공동의 적이 무너졌을 경우에 있는 일이다. 공동의 적이 존재하는 이상 우방이라는 범주는 견조하게 유지되며, 국방이라는 것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10.   도덕적인 침식에 대하여


돈이 될 것 같으니까 이제 와서 우크라이나 우방국임을 선언하자는 것은 참으로 격조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결정이 아무리 저렴하다고 하더라도 침략국과 비침략국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자는 주장보다 격조가 없기는 힘들 것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전쟁을 보는 것은 도덕적인 침식이지만, 경제적인 이유와 도덕적인 이유가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키는 데도 그것에 눈을 감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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