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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an 31. 2023

테니스라는 이름의 이상한 스포츠

London Life

테니스라는 이름의 이상한 스포츠

  

  

1.

메이저 테니스 대회의 남녀 상금은 정확하게 같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좀처럼 없는 일이다. 축구, 복싱과 골프에서 남녀 선수간 연봉, 대전료와 상금 차이를 보라. 10배 차이는 기본이다.


2.

여자 스포츠 중에 상금이 가장 많은 게 테니스다. 지난해 천만 달러 이상 소득을 올린 여자 선수 여덟 명 중에 여섯이 테니스 선수다.


3.

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의 경제가 붕괴하고 많은 사람이 경제난을 겪었다. 어린 선수들은 높은 상금을 보고 앞다투어 테니스에 뛰어들었다. 돈이 성취의 동기였던 선수는 한두 번의 우승 이후에 빠르게 코트에서 사라졌다.  


4.

오랜 기간 최정상에서 특정 종목을 이끌었던 선수가 해당 스포츠 팬으로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배척받는 경우는 없다. 배척받는 메시, 조던, 우즈를 생각해 보라. 예외적인 경우가 조코비치다.


5.

그는 테니스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조코비치는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누구도 해내지 못한 28연승을 했다. 호주 오픈 준결승전에 10번 진출해서 모두 이겼다. 그러니 결승전에도 10번 진출했다. 그 경기도 모두 이겼다. 이 기록이 페더러, 나달, 머레이의 전성기를 관통하면서 일어난 것이 믿기지 않는다.


6.

2022년 윔블던에서 다섯 명의 선수가 조코비치에게 1세트를 이기고도 경기에서 졌다. 권순우도 그랬다. 권순우를 응원하며 태극기를 흔들던 나는 TV 화면에 여러 번 잡혔다. 조코비치는 호주오픈에서 1세트를 이긴 93번의 경기에서 단 한번도 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호주 테니스팬은 조코비치를 응원하지 않았다. 조코비치는 결정적인 순간에 고의적이라고 할만한 방해를 여러 차례 받았다.


7.

영국은 스포츠 게임에 진심이다. 무엇보다 중계가 최고다. 캐스터와 해설자 역량이 특히 뛰어나다. 영국 중계 보다가 다른 나라 중계를 보면, ‘이거 유트브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8.

예외가 하나 있다. 조코비치 테니스 경기는 한국 중계가 영국 중계보다 훨씬 낫다. 영국 중계는 편파적이다. 상대선수가 잘하면, 뷰티풀, 어메이징, 판타스틱, 퍼펙트 등의  수식어가 나열된다. 조코비치가 잘하면 심플하게 굿이다. 예외적으로 투굿이란 단어가 사용된다. 오랜 랠리 끝에 상대 선수가 포인트를 따면, 칭찬세례가 이어진다. 조코비치가 오랜 랠리를 이기면, both of them이 환상적이라고 말한다.



9.

‘조코비치는 가짜로 부상당한 척한다. 부정한 것을 먹고 마신다. 교묘하게 코칭을 받는다. 메디컬 타임과 토일렛 타임으로 상대 흐름을 끊는다’라는 지적을 받는다. 비신사적이라는 이런 주장은 주관적이며 편파적이다.


10.

이번에는 조코비치 아버지의 친푸틴 행각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안티백신 선동자로 낙인찍힌 조코비치지만, 아버지 친러 이미지는 어떤 비난보다 그를 흔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준결승과 결승전에 나타나지 않았다.


11.

조코비치는 이런 모든 정황을 감안했을 때, 이번의 승리가 테니스 경력에서 가장 크고 값진 승리라고 말했다.


12.

그는 작심한듯 ‘치치파스와 나는 테니스 전통이 없는 변방의 작은 나라 출신이다’라고 말했다. 테니스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어디 출신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누구도 너희에게서 꿈을 빼앗아 갈 수 없게 하라‘라고 말했다. 그것은 변방의 작은 나라 출신인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세계로 나갈 꿈을 꾸지 못한 내게도 감동을 주었다.


13.

테니스는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3세트 경기를 하는 여자 선수와 5세트 경기를 하는 남자 선수에게 동일한 상금을 제공한다. 그러나 ‘테니스 라켓을 잡은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선수’(치치파스가 조코비치에게 한 말)도 극복할 수 없는 차별은 존재한다. 많은 것을 이뤘고 모든 것을 극복한 그는 경기 후에 감정에 복받쳤다. 팀원들 속에서 누워 흐느껴 울었다. 그런 울분을 삭이고 어떻게 침착한 경기력을 유지하는지 놀랍다.


14.

조코비치는 차별을 당했음을 예의 바르게 말했다. 묵혀둔 이야기를 꺼내면서 품격 있는 테니스 세계가 요구하는 예법을 충분히 따랐다.


15.

테니스 세계가 ‘차별당한 이유가 조코비치 스스로에게 있다’라고 말한다면, decent하고 noble하다는 수식어는 테니스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테니스는 가장 이상한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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