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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Feb 26. 2023

어윈 롬멜과 푸틴의 미래

London Life

어윈 롬멜과 푸틴의 미래

  

  

내가 크루즈 여행을 갔을 때에 동네 아저씨, 데이비드 딘은 튀니지에 갔다 왔다. 1943년 2월 21일에 그의 아버지, 클리포드 딘이 사막 탱크전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80주년을 기리기 위해 아버지 이름을 쓴 십자가를 들고 튀니지를 방문했다.


클리포드 딘을 포함한 250명의 영국군이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지만, 당시 전황은 이미 독일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943년 5월에 독일군은 영국과 미국의 협공으로 아프리카에서 최종적으로 패전했고, 18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독일군이 포로로 잡혔다. 클리포드 딘은 독일군에게 잡힌 거의 마지막 포로였던 셈이다.


포로가 된 그는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까지는 배로 갔고, 이탈리아에서 독일 캠프까지는 걸어서 갔다. 독일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에 영국과 미국은 아프리카 전투를 승리로 마무리했다. 독일군은 불리한 전황 속에서 250명의 영국군 포로를 죽이거나 해치지 않고 독일로 데려갔다.


클리포드 딘의 전언에 의하면, 그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어윈 롬멜(Erwin Rommel)의 명령 때문이었다. 롬멜은 포로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약속했고, 약속을 지켰다. 클리포드 딘이 인정하는 단 한 명의 독일인이 어윈 롬멜이다. 포로가 아프리카에서 독일까지 걸어가는 과정에서 음식은 적었지만, 부당한 대우는 없었다. 이탈리아에 도착하니 이탈리아인이 포로를 해치려고 했다. 클리포드 딘은 평생 이탈리아 사람을 몹시 싫어했다.



사막의 여우라고 불리는 어윈 롬멜은 1944년 7월에 히틀러 암살 작전에 연루되었다. 작전은 실패했고, 연루자 모두 처형되었다. 독일은 국민의 사랑을 온몸에 받고 있는 롬멜이 히틀러 암살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공표하지 않으려고 했다. 히틀러는 롬멜에게 자살을 권유했다. 그럴 경우 그의 명예를 지켜주고, 가족을 보호해 준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히틀러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히틀러 리더십은 여기에서 끝이 났고, 히틀러는 사실상 여기에서 죽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푸틴은 내부 세력에 의해 제거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 어윈 롬멜과 같은 군인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범의 말로는 늘 비슷한 법이다.


클리포드 딘은 데이비드 딘에게 전쟁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려했다. 탱크 전쟁의 잔인함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은 영국 정부가 전쟁 포로를 지중해 크루즈에 초대했을 때라고 한다. 지중해 크루즈는 클리포드 딘에게 참으로 특별했을 것이다.


지중해 크루즈는 나도 꼭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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