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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r 05. 2023

손금은 영국의 길거리에도 명화에도 있다.

London Life

손금은 영국의 길거리에도, 이태리 명화에도 있다.

  

  

어제 런던 시티 거리를 걷는데, 어떤 사람이 노숙자와 손바닥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같이 쪼그려 앉았다. 지나던 사람이 내게 물었다. ’ 뭔데?‘ ‘응! 손금을 봐주나 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손금을 봐준다는 표현을 영어로 몰랐다. 어버버하고 있으니, 물은 사람이 오히려 말해주었다. 파머스트리(palmistry)!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손금이 영국에도 있다니, 손금은 만국 공통어구나! 하기야 우리니라만 손금이 발달했을 리가 없잖아!


친구들 고시 공부하고, 전공 공부할 때 나는 손금, 관상, 사주팔자, 풍수지리 같은 책을 한 학기에 걸쳐서 봤다. 사주는 꽤나 어려웠지만, 풍수지리는 재미있었다. 손금과 관상은 쉽고 쓸모가 있었다.


어색한 자리에서, 군대처럼 시간 때우는 곳에서, 그리고 미팅에서 손금과 관상은 유용한 대화 수단이었다. 미팅 자리에서 손금을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도 그럴까?


’사주는 불여관상이고, 관상은 불여심상이며, 심상은 불여일실천이다‘라는 말이 주역인지 어디인지에 있다. 그 말에 손금을 슬그머니 얹어서 이렇게 말하고, 손금을 보기 시작하면 권위가 생겼다. ‘사주는 관상만 같지 못하고, 관상은 손금만 같지 못하고, 손금은 마음에 미치지 못하며, 마음은 행실에 미치지 못합니다. 일단 손 줘보세요.’


그럼 손을 내민다. 손을 만지다 보면 불만이 제기되기도 한다. ‘손금을 봐준다며, 손을 왜 이렇게 만져요?’ ‘손금보다 중요한 것은 수형입니다. 손의 형태 말이죠. 손의 형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손의 촉감입니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수긍한다. 사이비 교주가 이런 식일까?


(카라바지오, 점쟁이, 1595, 루브르 박물관)


그렇게 사기 아닌 사기로 사람들 손금을 봐준 적이 있다. 관상도 봐줬다. 페북 포스팅을 보면,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관상은 과학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손금과 관상을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손금과 관상은 살아온 대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특히 손은 평생 본인이 쓴 대로 형성되고 손에 금이 잡힌다.


평생 삽을 잡은 사람과 연필을 잡은 사람과 골프채를 잡은 사람과 타자를 친 사람의 수형과 손금은 대번에 표시가 난다. 요즘은 수형만으로 사용하는 핸드폰을 맞춘다는 구라도 있다. 아이폰 프로와 아이폰 프로 맥스를 쓰는 사람을 구별해 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프로맥스를 쓰는 사람의 새끼손가락 두번째 관절이 더 많이 패일 것이다.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고 연필을 오래 잡은 흔적이 있는데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으면 그 사람의 과거를 맞추기는 쉬운 일이다. 그에 기반해서 ‘당신은 공부 이외에 재주가 없어! 그냥 가던 길을 쭈욱 가!‘라고 말하면, 용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손금은 동서고금을 통해 두루두루 쓰였던 사술 중의 하나다. 관상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관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학폭과 관련된 부자의 관상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관상은 과학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상을 바로 잡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것은 심상과 실천 없이는 안된다.


대통령은 손바닥에 왕자를 적고 나타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통치행위에 사술이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아주 조금이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 전에 타임스에 ‘천공스승’에 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댓글을 유심히 봤는데, 그중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남한이 북한과 큰 차이가 없다고?‘


천공스승! 나는 신이다! 학폭! 여러 양상이 참으로 모양 빠진다. 길거리 노숙 세계에서나 일어날 일이 정치, 종교, 교육의 최상단에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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