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인생은 질 수밖에 없는 고독한 투쟁이지만, 매력과 고귀함이 그 싸움 안에 내재되어 있다.“
(윌리엄 앤더슨이 지난해 The Open 직전에 ’스코틀랜드 골프와 미국 골프의 대조‘라는 제목으로 쓴 글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골프에 대한 많은 자료를 모으고, 많은 글을 읽는 가운데 만난 글로서 혼자 보기 아까워 번역해서 봅니다. 번역은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자의적으로 간소화한 부분이 있습니다. 골프뿐 아니라 인생과 종교에 관한 글입니다.)
매년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치러 스코틀랜드로 갑니다. 대부분은 골프의 고향에 대한 기대감이 있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돌아옵니다. 왜 그럴까요?
스코틀랜드 코스는 그들이 기대한 곳과 다릅니다. 대부분은 스프링쿨러가 없어 물을 주지 못하며, 페어웨이 잔디는 죽어 갈색이고, 땅은 딱딱합니다. 나무가 없어 그늘이 없고 황량해 보입니다. 스코틀랜드 링크스는 바닷가에 있지만 멋들어진 바다 풍광도 인상적인 워터 해저드도 없습니다. 녹색 페어웨이, 무성한 나무와 그림 같은 연못에 익숙한 골퍼는 대부분의 스코틀랜드 코스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게다가 스코틀랜드의 골프에는 골프 카트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골퍼는 걸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종종 가방을 들고 다닙니다. 스코틀랜드 코스는 일반적으로 간소한 클럽하우스를 가지고 있어 편의 시설이 약합니다. 드라이빙 레인지가 없는 것도 특징입니다. 플레이 전에 연습도 충분히 할 수 없고, 플레이에 나가서는 고생이 시작됩니다. 강한 바람과 비에 혀를 내두를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스코틀랜드 골프는 공정하지 않은 게임처럼 느껴집니다. 스코틀랜드 골프에서 행운은 큰 역할을 합니다. 궂은 날씨와 예상하지 못한 코스 상태 때문에 골퍼들은 스코틀랜드 골프가 정상적인 게임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주 잘 친 샷도 벙커나 해저드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목표지점이 보이지 않는 샷, 숨겨진 벙커와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오래된 돌담과도 만나게 됩니다. 오래된 돌담은 인공장애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스코틀랜드로 여행하는 대부분의 골퍼는 좋은 클럽의 회원이며, 훌륭한 골프코스를 찾아다니는 골퍼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일반적인 퍼블릭 코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스코틀랜드 골프코스는 대부분 퍼블릭이며, 나아가 골프코스의 위치 자체가 너무 퍼블릭합니다. St. Andrews, North Berwick와 같은 코스는 차도와 인도 옆에 있으며, 티샷 박스와 그린은 동네 산책로의 일부입니다. 지역 주민이 코스를 걷고 골퍼의 플레이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것은 예사입니다. 나무와 높은 울타리에 가려져 있는 아늑한 골프코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스코틀랜드 골프는 다소 불안해 보일 수 있습니다.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골프는 삶에 대한 은유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의 삶은 다른 곳에서의 삶과 다르기 때문에 골프라는 게임에 대한 인식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삶에서 종교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16세기 일어난 종교개혁입니다. 스코틀랜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개신교는 존 칼빈의 추종자인 존 녹스가 이끈 장로교였습니다. 칼빈주의는 스코틀랜드인의 삶과 삶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칼빈주의의 핵심 중 하나가 예정설입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인류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믿음입니다. 사람이 천국에 갈 것인지 지옥에 갈 것인지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사람은 이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오직 소수, 즉 선택된 소수만을 구원하기로 했습니다. 인류의 대다수는 지옥에 갈 운명을 가진 죄인입니다. 칼빈에 따르면 삶은 죽음과 같습니다. 불공평해 보이는 처벌로 가득 차 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인생은 공평하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공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골프는 이러한 칼빈주의적 태도를 반영합니다. 좋은 드라이브 샷을 쳤지만 숨겨진 벙커에 빠지거나, 겉으로 보기에 좋은 어프로치 샷을 쳤지만 딱딱한 그린에 맞고 튕겨 해저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인생이나 골프코스에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숙명론을 낳습니다. 스코틀랜드 골퍼는 다른 골퍼들처럼 화를 내지 않습니다. 욕설과 클럽 던지기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코틀랜드 골퍼들도 나쁜 샷이나 나쁜 바운스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행운이 의외로 자신에게 호의적일 때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상을 받을 만한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아도 선택받은 소수가 되어 천국에 갈 수 있듯이 골프장에서도 행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뒤땅을 치거나 타핑을 쳤다고 해도 공이 지면을 따라 굴러서 그린에 올라가 핀에 붙을 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골프는 행운과 불운의 게임입니다.
골프는 그리스도인의 덕목인 인내와 겸손을 가르칩니다. 벙커를 만나면 페널티를 받아들이고 공을 벙커 밖으로 꺼내면 됩니다. 한 샷을 손해 보지 않고 멋진 샷을 치려고 한다면 골퍼는 교만의 죄를 범하는 것이 되며,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됩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골프는 상대를 이기는 게임이 아니고 자신의 성격을 테스트하는 게임입니다. 많은 스코틀랜드 골퍼들은 점수조차 기록하지 않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몇몇 선수가 아닌 이상 골퍼는 이 게임에서 집니다. 중요한 것은 패배 가운데에서도 얻을 수 있는 작은 승리이며, 그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역경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골프는 질 수밖에 없는 고독한 투쟁이지만, 매력과 고귀함이 그 싸움 안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골프에 대한 칼빈주의적 접근 방식은 골프의 성지인 세인트 앤드류스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납니다. 골프코스의 이름 자체가 종교적입니다. 올드코스에는 숨겨진 벙커와 공의 착지 지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많습니다. 이것이 인생이며, 신앙을 필요로 하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길을 거니는 많은 사람에게 공개되어 골퍼는 공개적 참회를 수행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드는 14번 홀의 거대한 벙커는 '지옥'을 연상시킵니다. 18번 홀 그린에 도달하기 전에 위험한 ‘죄의 계곡’을 통과해야 합니다. 칼빈주의 유산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올드코스에서는 안식일(주일)에 플레이를 하지 않습니다.
현대 골퍼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미국의 골프는 스코틀랜드 골프와 다릅니다. 미국이 근본적으로 스코틀랜드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산물이 아니라 18세기 계몽주의의 산물입니다. 계몽주의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지적 정치적 배경이 됩니다. Thomas Jefferson과 그 시대의 다른 주요 인물들은 삶에 대한 공통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Knox와 Calvin을 거부하면서 인간은 더 이상 악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삶과 모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자연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또 변화시켜야 합니다. 정부조직, 과학과 예술의 분야에서 완벽함이 도달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제퍼슨의 독립 선언서에서 행복은 기대되는 것뿐 아니라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인 신이 준 인간의 권리였습니다. 미국의 골프는 1890년대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발전했고, 계몽주의 신앙이 미국인의 삶에 깊이 뿌리 박힌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코스를 설계한 스코틀랜드인과 달리 미국의 골프 설계자는 자연을 개선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땅을 옮기고, 인공장애물을 만들고, 꽃을 심고, 연못을 만들고, 코스에 비료를 주고 물을 뿌렸습니다. 골프 코스는 매력적인 놀이터가 되었고 공정해졌습니다. 숨겨진 벙커가 없어지고, 타깃이 불분명한 샷을 날려야 할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물을 뿌린 페어웨이와 그린은 바운스가 잘못될 가능성을 최소화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삶이 공정하기를 기대합니다. 따라서 골프는 공정해야 합니다. Donald Ross는 20세기 전반기에 가장 뛰어난 미국 골프 설계자였으며 400개 이상의 코스를 설계했습니다. 로스는 스코틀랜드 더녹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고 그에 따라 디자인했습니다. 그는 골프는 고행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골프코스라고 해서 좋은 점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린 주변에는 함정이 있고 페어웨이를 따라 숲이 있지만 최대한 공정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좋은 샷은 보상을 받고 나쁜 샷은 벌을 받습니다. 행운이 최소화되었습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많은 골퍼들이 실력을 향상할 수 있다고 믿으며,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노력합니다. 많은 골프 연습장, 골프 레슨, 교육용 유튜브, 새로운 장비가 산업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대부분의 골퍼에게 골프는 실망스러운 게임이 됩니다. 완벽을 달성할 수 있지만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코틀랜드에는 드라이빙 레인지가 거의 없으며 구식 장비를 가지고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은 개선하려는 노력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압니다. 초심자 단계를 넘어서면 더 이상 극적으로 나아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스코틀랜드 골프의 특징입니다. 신이 주신 재능과 신이 판단하신 행운으로 승부를 겨룰 뿐입니다.
스코틀랜드에 많은 관광객이 옵니다.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의 고급 클럽에서 고급 골프를 치는 골퍼가 옵니다. 스코틀랜드도 이들의 구미에 맞게 클럽하우스를 꾸미고 골프코스를 바꾸기도 합니다. 이러한 미국 버전의 스코틀랜드 골프는 진정한 스코틀랜드 골프가 아닙니다. 코스는 수리되고 스프링쿨러에서 물이 넘쳐납니다. 만들어진 코스는 자연적인 코스보다 더 완벽합니다. 불공평을 조장하는 많은 위험은 조금씩 제거됩니다. 숨겨진 물길 대신에 그린 앞에는 어디에서 봐도 장관인 연못이 놓입니다. 운이 좋아 그린에 안착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완벽하지 않는 샷은 매우 공평하게 처벌됩니다.
운 자체는 불공평하지만, 스코틀랜드 골프코스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두 명의 골퍼가 한 명은 페어웨이에서, 다른 한 명은 보이지도 않는 와일드 러프에서 비슷한 샷을 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벙커로 튕겨 들어가는 좋은 샷을 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그린에 올리는 타핑을 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랜덤한 행운은 골프라는 게임을 더욱 불공평하게 만듭니다. 이런 것은 현대의 골프코스 설계자나 골퍼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에게 행운이 되었다고 해도 감사해하지 않는 미묘함입니다.
미국식 코스가 더는 스코틀랜드식으로 바뀌지 않지만 스코틀랜드식 코스는 점점 미국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골퍼들도 PGA 투어를 TV로 보며 그들 코스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인의 삶에서 전통적 칼빈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듭니다. 이 두 가지가 합해져 스코틀랜드 골프의 본질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스코틀랜드 코스는 자동 관개 시스템을 설치했으며, 대부분의 모든 벙커는 잘 관리되어집니다. 현재 St. Andrews에는 드라이빙 레인지와 방문객을 위한 고급 클럽하우스가 있습니다. Gleneagles 리조트에는 Jack Nicklaus가 설계한 미국식 코스가 있습니다. 최근에 Loch Lomond GC가 Glasgow 외곽에 문을 열었습니다. 미국인이 소유하고 미국인이 설계했으며 대부분의 회원이 미국인입니다. 코스는 내륙에 있으며, 컨디션이 좋고, 공정합니다. 클럽은 멤버만을 위한 공간이며, 멤버가 되려면 아주 많은 돈을 내야 합니다. 현대의 골프는 스코틀랜드 골프가 추구했던 것과 정확히 반대를 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