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라이프
안철수, 런던에서 에드워드 제너를 만나다
안철수가 런던에 왔다. 선거가 끝나고, 해외에 가는 것이 패턴이 되었다. 대선이 2년 앞으로 다가왔기에 한가하게 다녀 갈 수는 없었다. 런던 교민과의 만남이라는 행사가 기획되었다. 내가 코디네이터를 맞았다.
나는 탁현민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아이디어를 냈다. 하이드 파크의 잔디밭에서 6피트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비스듬하게 누울 수도 있었다. 모두들 헤드셋을 차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보기에 좋았고, 드론으로 찍은 사진이 예술로 나왔다.
교민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진행 상황을 체크하느라 바빠서 초반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토론 끝무렵에 헤드셋을 차고 앉았다. 인상적인 질문을 한다면 안철수 대표의 눈에 들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별 가능성이 없지만, 세상일 누가 알겠는가? 좋은 인상을 주어 나쁠 일은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되면, 초기에 어느 순으로 백신을 접종해야 할까요?’ 좋은 질문이라고 던졌는데, 안철수 대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먼저 프런트 라인 종사자부터 접종하고, 안전성이 확실하다면 기저 질환자에게 접종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나라마다 배분은 WHO의 권고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대답에 안 대표는 만족했다. 뜻밖의 질문에 순발력 있는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내 질문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더 좋은 질문을 하고 싶었다.
‘안 대표는 벤처 사업가 정체성을 가지고 선거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벤처 사업가가 대통령이 된 사례가 없습니다.(있는지 모르면서 그냥 질러봄.) 그에 반해 의사가 대통령이 된 사례는 많습니다.(많은지 모르면서 단호하게 말함.) 이번 총선에서도 의료 봉사와 마라톤이라는 두 가지 새로운 방식의 선거운동을 선보였는데, 전자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의사 정체성을 가지고 선거에 임하는 것은 어떨까요?’
안 대표는 질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왜 진작에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표정으로 질문에 답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벤처 사업가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 좋습니다. 타다 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벤처 기업가인 김병관은 큰 차이로 낙선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우리나라 벤처 사업가들이 기부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인 트위터 창업자 잭 도르시는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1조 원을 기부했습니다. 한국 벤처 사업가 중에 기부를 약속한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선거를 몇 번 치른 정치인답게 모든 대답이 자기 자랑으로 연결되었다. 말이 삼천포로 빠지지 않도록 말을 잘라야 했다. ‘아뇨.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의사로서 정체성을 가져야 선거에 도움이 되겠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아 그렇죠. 의사로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많죠. 지금 막 생각이 안 나는데, 누가 있죠?’라고 안철수 대표가 물었다.
그냥 한 말이었는데 질문을 되받을 줄은 몰랐다. 순발력이 필요했다. 이럴 때 영국 총리 중에 의사 출신을 예로 들면 딱인데 생각나는 게 없었다. 순간 나이팅게일밖에 생각이 안 났다. 에드워드 제너나 알렉산더 플레밍은 총리 안 하고 뭐한 건가?
‘투르크메니스탄이란 나라가 있는데, 그곳에는 의사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입니다.’ 나는 말해 놓고도 멋쩍었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는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았다. 보좌진에게 빨리 구글을 통해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해 찾아보라고 손동작을 하면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렇죠. 투르크메니스탄, 구르반 뭐라고요? 베르디 누구라고요? 발음하기 어려우니 편의상 구르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 사이에 보좌관이 검색 결과를 보여주었다. 순간 안철수 대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안 대표는 비서가 찾아 준 투르크메니스탄 정보를 토대로 자신감 있는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투르크메니스탄이란 나라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꽤 잘 사는 나라입니다. 구르반은 치과 의사였는데, 의사가 대통령을 하니까,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이 확실합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망자가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갈 길을 보여 주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런던 시민과의 하이드 파크 잔디밭 대화는 잘 마무리되었다. 안철수 대표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나는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영국 대사는 따놓은 당상이다.
안철수 대표는 그냥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나를 붙잡았다. ‘우리가 도시락을 몇 개 준비했는데, 행사도 도와주고 좋은 질문도 해주었으니 같이 식사를 하죠! 어디가 좋을까요?’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저기 조금만 가면 하이디 파크 중간에 에드워드 제너의 동상이 있습니다. 그곳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게 어떨까요?’
안철수 대표는 보좌진에게 말했다. ‘에드워드 제너가 누군지 알죠? 최초로 백신을 개발하여 천연두를 퇴치한 사람이에요. 제너의 백신이 없었다면 안철수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도 없었다고 할 수 있죠.’
진짜로 하이드 파크의 중간에 에드워드 제너의 동상이 있다. 이 얼마나 완벽한 기획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안철수 대표가 물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의사가 대통령을 해서 그런지, 의료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나 봅니다. 어떻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한 명도 안 나옵니까?’
나는 ‘의사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투르크메니스탄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야만 했다. 그러나 에드워드 제너의 동상 앞에서 거짓을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영국 대사 자리가 탐이 나도 말이다. 내가 아는 투르크메니스탄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느 국민이 구르반굴르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에게 의사가 주사를 제대로 놓지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열 받아서 의사와 의대생을 소집하여 족칩니다. ‘니들 뭐하는 놈들이야! 의사가 주사를 못 놔? 나 때는 말이야...’ 그러자 의대생이 일어나서 말합니다. ‘맨날 행사에 동원되고 길 청소하느라고 주사 놓는 법을 배울 시간이 없습니다.’ 그 날 이후로 의대생들은 더 이상 국가 행사에 동원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확진자가 없다고 말하면 그 순간에 확진자가 없어지는 나라입니다. 확진자가 있어야 사망자도 있죠?’
그 후로 모두들 조용히 도시락만 먹었다. 침묵을 깨기 위해 무슨 말이든지 필요했다. 천연두 백신 실험에 최초로 응해준 정원사의 아들에게 에드워드 제너가 집 한 채를 남겨 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제너의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