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료
코로나 백신 임상시험에 참가하고 있는 지원자의 이야기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테스트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자 타임지에 백신 테스트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약간의 죄의식을 덜기 위해 타임지 기사를 읽기 쉽게 번역해서 올려 봅니다.
나, Jack Sommers는 직장을 잃은 후 느슨해졌고, 변화를 주기 위해 백신 시험에 자원했다. 테스트를 위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가 나를 소파에 눕히고, ‘미안해요. 내가 겨드랑이를 좀 만져볼게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안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6주간 집에 있으면서 그렇게 위생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직장에서 해고된 지 하루 만에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위한 시험용 쥐가 되기로 결정했다. ‘18-55세의 건강한 자원 봉사자를 찾는다’는 링크를 클릭했고, 내 병력에 대한 설문에 응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전화를 받았다.
내 결정은 평범한 것이었지만, 티비에 나와 백신 개발에 공헌한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말하는 상상을 해 보기도 했다. 실업자로서 외롭고 무력했지만, 백신 시험에 응하면서 약간의 존재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건강한 34세의 남성이며, 집에 바이러스에 취약한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니며, 병원은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여동생은 카카오톡 가족 채팅 방에 내가 백신 임상시험에 응하게 된 사실을 알리면서, 마이클 잭슨이 희한하게 변한 사진을 같이 올리기도 했다. 나는 조금 두렵기도 했다. 최악의 상황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
런던 남부 투팅 지역에 있는 세인트 조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백신 시험 지원자들은 모두 한 곳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임상시험 과정 전체를 설명하는 비디오를 시청했다. 비디오에서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옥스퍼드 대학은 임페리얼 대학교 및 세계의 여러 연구소와 경쟁하면서 백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사우스 햄턴, 런던 및 브리스톨에 있는 다섯 개의 병원에서 1 102명의 자원자가 임상시험에 참여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는 백신이 투여될 것이고, 누구에게는 가짜 백신(placebo)이 투여될 것입니다. 임상 시험에서 백신의 효과가 입증되면, AstraZeneca 제약회사에서 연말까지 수천만 개의 백신을 생산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가볍거나 심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임상시험은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자원자들에게 심각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나중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게 되면 이 실패한 실험으로 인해 증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참여자 여러분들은 이 시험의 과정 중에 언제든지 시험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나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기내 안전방송을 시청하듯이 공허한 눈 빛으로 비디오를 시청하고 있었다.’
나는 추가로 몇 개의 서류에 사인을 했고, 소변 샘플을 제출했다. 의사는 내 근육을 만져 보았는데, 나는 왜 근육을 만지는지 묻지 않았다. 간호사는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접종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원숭이는 백신 테스트를 안전하게 잘 통과했다’고 말해 주었다. 그 말에 ‘난 원숭이보다는 용감하지.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일주일 후에 주사를 맞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무서웠다. 어린 시절 느꼈던 주사에 대한 공포가 뒤늦게 찾아왔다. 이게 시험이 아니라 실험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히말라야 원숭이’라는 단어보다는 ‘새앙쥐’라는 단어가 훨씬 귀엽게 들린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실험용 쥐인가?
나는 용기를 얻고자 트위터에 내 상황을 썼다. 2 100개 이상의 댓글과 21 000개 이상의 좋아요가 쏟아졌다. 심한 기저 질환이 있어 한 발짝도 집에서 나오고 있지 못하고 있는 한 여성은 백신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 되는지 말해주었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그들의 가족도 나에게 큰 박수를 보내 주었다.
일부 백신 음모론자들은 빌 게이츠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몇 주간의 고립과 SNS를 타고 돌아다니는 과장된 뉴스들이 내게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렇지만 그들은 극소수였다. 더 좋은 시대를 위해 더 좋은 뉴스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안전과 건강을 기원해 주었다.
백신을 맞기 위해 병원으로 갔다. 간호사의 딸꾹질 소리가 말소리로 들릴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내 팔에 매달린 주사 바늘을 보면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접종 후에 남은 자국은 너무나 작아서 간호사가 자국을 다시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체온계, 피부의 부기와 홍조를 테스트할 테이프와 매일매일의 증상을 기록할 일기장을 받아 집에 돌아왔다.
그 후로 나는 미열을 느꼈고, 팔에 시큰함을 느꼈다. 다음 달에 나는 더 많은 테스트를 위해 병원에 다시 가야 한다.
내 안의 누군가는 나의 삶이 이전과 똑같다는 것에 실망감을 들어내기도 했다. 트위터에 업데이트를 기대하는 친구들에게 상태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리면서 그들의 성원에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리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평소와 똑같아’라는 말뿐인 것이 오히려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게 다 ‘평소와 똑같아’ 지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하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