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문학
역사 왜곡 금지법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양향자 의원이 역사 왜곡 금지법을 발의했는데 그에 대한 부정적 포스팅이 페이스북에 많다.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 문제가 시끄러운 가운데 등장한 법안이라 더욱 관심이 간다. 마침 어제는 FB 친구가 줄리안 반스의 ‘시대의 소음’에 관한 포스팅을 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일생을 다룬 소설 ‘시대의 소음’은 음악으로 풀어내는 역사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시대의 소음’은 최고의 소설이다. 2011년 맨 부커 상을 수상한 줄리안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Sense of an Ending)’도 다시 읽어 보았다. 하루에 책 두 권을 읽어 본 것이 20년 만이다. 줄리안 반스의 작품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Man Booker상은 영국에서 출간 된 영어로 쓰인 소설에 수여되는 상이다. 권위 있는 상이다. 2016년에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맨 부커 인터내셔날 상은 영국에서 출간 된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원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번역이다. 맨 부커 본상과 인터내셔날 상은 상금이 50 000 파운드로 동일하지만, 인터내셔날 수상자는 번역자와 상금을 절반으로 나눠야 한다. 책을 아는 사람은 번역자를 잘 대접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Deborah Smith는 과도한 의역으로 원문을 망쳤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번역이 맨 부커 인터내셔날 상을 탔다면, 과연 그게 비난받을 일인가?
‘시대의 소음’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작가의 의도를 모른 채 직역된 구절이 종종 있다. ‘시대의 소음’을 내가 번역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데보라 스미쓰는 케임브리지를 졸업하고 한국어를 공부한 지 2년 만에 한국어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한강만큼 대단하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양향자 의원이 읽어 보는 게 좋겠다. 긴 소설이 아니어서 금방 읽을 수 있으니 바쁜 국회의원이라도 마다할 일은 아니다. 출퇴근 길에만 읽어도 이틀이면 읽을 수 있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역사는 자연스럽게 왜곡된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짧은 책에서 ‘기억’이라는 단어는 101번이나 등장한다. ‘우리가 살면서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똑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책 속의 주인공은 40년 전의 중요한 사건을 전혀 엉뚱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가까운 기억이라고 해서 먼 기억보다 정확한 것은 아니다. 윤미향 의원이 3년 전 기억을 혼동한다고 해서 할머니의 80년 전 기억은 더 혼동스러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가까운 기억도 먼 기억 이상으로 부정확할 수 있다.
현대의 역사는 기억이 아니라 기록과 영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상이 있다고 충분한 것은 아니다. 넥플릭스 드라마 ‘메시아’를 보면, 메시아가 많은 이적을 행한다. 이적은 모바일 폰으로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공유되지만, 그렇다고 그가 물 위를 걸었다는 사실이 자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자료를 만나면서 생기는 확신이다.’ 오늘은 이렇게 확신하고 내일은 다르게 확신할 수 있다. 양향자 의원이 가장 염두에 둔 것은 광주의 역사일 것이다. 광주에 대한 역사 해석이 바뀔 것이 왜 두려운가? 양향자 의원이 ‘역사를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며, 같은 점에서 역사학자도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역사와 역사학자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양향자 의원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믿을 것이다. 승자가 바뀔 경우 역사도 바뀔 것이라고 우려한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만 기록되지 않는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쓸 때, 네루가 세계사 편력을 썼을 때, 그들이 어떤 승자의 위치에 있었는가?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기도 하지만, 패배자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 물론 요한복음이 자기기만이라는 큰 일 날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요한은 승자도 패자도 아니었다. ‘어쩌면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가까운 측면도 있다.’
광주의 국회의원 양향자는 맨 부커 상에 빛나는 광주의 딸 한강처럼 열심히 기억하고 기록하면 된다. 한강은 광주를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2014년에 썼고, 데보라 스미쓰가 2016년에 번역했다. 영국에서 Human Acts로 출간되었다. ‘소년이 온다’는 맨 부커 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