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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n 08. 2020

홍범도, 소련의 고려인과 영국의 인도인

런던 라이프

홍범도, 소련의 고려인과 영국의 인도인


문재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올 것이다’라고 말했고, 안철수 대표는 ‘홍범도 장군이 영웅이듯 백선엽 장군도 영웅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카자흐스탄에서 계봉우, 황운정 지사의 유해가 봉환되어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홍범도 장관의 무덤은 카자흐스탄의 끄질오르다에 있다. 끄질오르다는 러시아 우주선이 발사되는 바이코노루 부근에 있는 도시다. 나는 1997년 여름에 알마티에서 기차를 타고 끄질오르다까지 가봤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가는 데만 하루가 넘게 걸린 것 같다. 끄질오르다는 오지게 더웠고, 모기가 많았다.

홍범도 장군의 묘지석은 인상적이었다. 홍범도의 이름에서 가운데 글자인 ‘범’ 자가 유난히 크게 쓰여 있었다. 호랑이가 되고 싶었던 장군의 뜻이었을 것이라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범’은 호랑이를 뜻하는 한자가 아니고, 모범 범자다. 모범이 되고 싶었던 홍범도의 뜻이 묘지석에 나타난 것이었을까? 땅 속은 덮지 않고, 모기가 없기를 바랐다.  



끄질오르다를 방문하고 나서 아스타나로 향했다. 나는 ‘나눔과 섬김’을 모토로 하는 한국 국제협력단(KOICA)의 봉사단원이었다. 아스타나에서 나를 반겨준 사람은 황 라이사 운제노브나(Хуан Раиса Унденовна)였다. 지난해 한국으로 유해가 봉환되어 온 황운정 지사의 따님이다. 할머니는 당시 74세였고, 거동이 편하지는 않았다. 라이사 할머니 집에서 두 달 정도 살았다. 할머니가 장물(된장국)에 밥을 해주었고, 빨래를 해주었지만, 나는 청소 한번 직접 하지 않았다. 나눔과 섬김이라고? 웃음이 나온다.

할머니의 돌아가신 남편은 경제학 교수였고 화가였다. 집에는 그림도 많았다. 할머니는 아버지와 남편을 자랑스러워했다. 남편이 소련 공산당 중앙대회에서 받아온 레닌 동상을 자랑처럼 이야기했다. 레닌이 우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동상은 ‘사회주의는 휴머니즘’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하루는 할머니가 먼지가 가득한 박스에서 손글씨가 빼곡히 쓰여 있는 종이를 꺼냈다. 어릴 적 부르던 노래라고 하면서 노래를 들려주었다. 1930년대 이전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불렀던 노래였다. 노래가 얼마나 웃기고 재밌던지 박장대소했다. 당시에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할머니 노래 장면을 촬영했을 것이고, 유튜브에 공개했다면 천만 조회는 따놓은 당상이었을텐데.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인 베쩨슬라브 리가 가끔 와서 내게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는 화학과 교수였는데 그림도 잘 그렸다. 알마티에 있는 한국 대사관의 참사가 아스타나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당시에는 대한민국 공무원이 오면 고려인들은 무척 좋아했다. 베쩨슬라브 리가 손님에게 줄 선물이라고 정성 들여 홍범도 장군을 그렸다.



그 참사인지 공사인지는 하루를 남기고 바쁘다는 핑계로 방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황운정 지사의 손자가 그린 홍범도 장군의 그림은 할머니 집에 남게 되었고,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할머니 집을 떠날 때, 할머니에게 LG 청소기를 선물해 주었다. 청소 한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떠나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고, 뭐든지 답례로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잔머리가 돌아갔다. 홍범도 그림이나 레닌 동상을 달라고 하면 둘 중에 하나는 기꺼이 주실 수 것 같았다. 순간 갈등을 했다. 홍범도냐? 레닌이야?

지금 내 곁에는 레닌 동상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레닌에 대한 애정은 식었고 ‘사회주의는 휴머니즘’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때 레닌이 아닌 홍범도를 선택했어야 했다. 레닌 동상을 볼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고려인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는 에티오피아에서 쫓겨난 인도인의 영국이주처럼 슬프면서도 극악무도한 인류 역사의 한 장면이다. 1970년 에티오피아에서 쫓겨나면서 옷가지만 챙겨 나온 인도인처럼, 고려인도 봇짐 하나만 들고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그 강제 이주 고려인 중에 홍범도, 계봉우, 황운정이 있었다.

데이비드 카메룬은 에티오피아 인도인의 영국 이주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민이라고 말했다. 강제 축출은 슬픈 역사지만, 후손들이 그 역사를 뛰어넘는 성공을 영국에서 이뤄냈다.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도 슬픈 역사지만, 후손들이 그 슬픔을 뛰어넘는 성공을 소련, 러시아, 카자흐스탄에서 거두었다.

소련의 고려인들은 가는 곳마다 벼농사를 일으켰고, 많은 노동 영웅을 배출했다. 소련의 노동 영웅은 영국의 Sir에 해당하는 권위를 가진다. 그보다 더 명예로운 것일 수도 있다. 많은 고려인이 소련 시기 고위직에 올랐고, 유명 인사가 되었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일대에 성공한 고려인은 부지기수다. 카자흐스탄 최고 갑부도 고려인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아스타나를 찾아가야겠다. 그래서 황운정의 손자가 그린 홍범도의 그림을 수소문해서 찾아보아야겠다. 그 그림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될 때, 영정 사진으로 가장 적격인 그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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