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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pr 14. 2020

영국에서 사는 인도 사람들의 위상

영국 사회

영국에 사는 인도인의 재산은 중간값(average가 아닌 median)으로 3.5억원(2012년 기준)이며, 이는 백인 영국인(white british) 다음으로 높다. 연금을 제외한 재산으로는 가장 높다. 인도 본국의 부자들이 영국에 와서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시간당 평균 인건비가 23 700원(2016년 기준)으로 백인 영국인을 포함하여 어떤 분류 단위보다 높다. 전문직 종사자 비율도 43%로 일등이다. 인도인들이 잘 사는 이유는 본국으로부터의 이전 소득이 많기 때문이 아니고, 영국 내에서 받는 급여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인도인의 GCSE(고등학교 졸업 시험) 성적과 A level(대학 입학시험) 성적은 중국인 다음으로 좋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고, 좋은 대학을 간다는 이야기며, 대학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중국인이 공부는 더 잘하지만 학업을 마친 후에 돌아가는 비율이 높고, 인도인처럼 영국에 완전히 동화되어 살지 않는다.


인도인들은 세계 1차, 2차 대전에 영국군으로 참전을 했으며, 극도의 차별을 이기고 오늘날의 영국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영국이 다른 유럽 나라보다 인종 차별이 덜하게 된 것은 자신들의 투쟁의 결과라고 믿는다. 뒤늦게 영국에 온 중국인이나 다른 아시아인은 무임승차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소수다.


다른 한편으로 인도인은 영국인처럼 크리켓, 하키 같은 스포츠를 즐긴다. 운동장에서 같이 땀을 흘리며 경쟁하는 것만큼 서로를 대등하게 만드는 일이 없으며, 서로 동화되기 쉬운 방법이 없다. 영국에는 1.5백만의 인도인과 1.2백만의 파키스탄인이 살고 있다.


영국 정부에서 총리 바로 밑의 자리인 Chancellor of the Exchequer (재무부 장관)가 인도인이다. 내무부 장관도 인도인이다. 한 달 전에 재무부 장관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리쉬 수낙(Rishi Sunak)은 재미난 인물이다. 4주 만에 모든 업무를 파악하고, 방대한 2020년 예산을 국회에서 브리핑하면서 한 번의 망설임도 없었다. 45조 원에 달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예산도 같이 승인받았다. 수낙의 브리핑 과정에서 존슨 총리는 ‘내가 정녕 저 친구를 뽑았다는 말인가?’라는 흐뭇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어디서 저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리정혁 대위가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지게 된 것과 비슷한 스토리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이튼 스쿨보다 좋다는 윈체스터 스쿨을 졸업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PPE(철학 정치학 경제학)를 전공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스탠퍼드에서 MBA를 했다. 스탠퍼드에서 인도 재벌의 딸을 만나 결혼했다. 이후 모건 스탠리에서 일했고, 펀드 매니저로 일하다가, 국회의원이 되었다. 리쉬 수낙은 성공한 인도인을 상징한다.


일등석 표를 가지고 있어도 객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기차 발판에 앉아 눈물을 흘렸던 마하트마 간디의 씩씩한 버전이 리쉬 수 낙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은 계급사회라고 말하지만 영국은 계급 사회가 아니다. 귀족이 있지만, 귀족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모건 스탠리에서 일하다가 정부에서 예산을 총괄할 수 있고, 햇병아리 정치인이 재무장관이 될 수 있다. 인도인이 재무부 장관이 될 수도 있고, 내무부 장관이 될 수도 있으며, 파키스탄인이 선출직 런던 시장이 될 수도 있다.


영국에 사는 인도인들이 중국인이나 한국인을 무시한다는 이야기가 간혹 들리기도 한다. 정체성의 유지를 위해서는 타자와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걸 위해서는 무시하는 속마음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드러내는 것은 격조가 없는 것이고, 배운 게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야 어느 집단에나 조금씩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british indian 중에도 다소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쩌면 필요악일 수도 있다.


몇몇의 필요악에도 불구하고 온갖 차별을 극복하고 영국 주류 사회에 정착하여 영국을 변화시키고 있는 인도인들의 노력과 성과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인도인들은 영국을 바꿔 놓았으니까 이제 인도만 좀 바꾸면 된다. 우리는 한국을 잘 바꿔 놓았으니 이제 나가서 세계를 좀 바꿔 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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