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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pr 14. 2020

영국에서 사는 파키스탄인의 위상

영국 사회

코로나 관련한 포스팅이 너무 많으니 피로감이 생기는 것 같아 영국에 사는 인도인 이야기를 가볍게 했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주셨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몇 분의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글을 쓴 후는 몇몇 날까로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다루지 않을 수 없는 토픽 하나가 생겼습니다.


인도인이 영국으로 이주한 것은 언제인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말에서 인도와 영국의 관계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연상합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인도인들이 영국에 살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동인도 회사가 활동하던 시기부터 소수가 살았습니다. 1930년에는 7천명가량 살았다고 합니다. 이 숫자가 갑자기 증가한 것은 1970년 이후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1970년에 우간다에서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희대의 독재자 Idi Amin이 권력을 잡고, 인도인을 하루아침에 쫓아냅니다. 인도인이 가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옷가지와 일인당 50불의 돈입니다. 사업, 재산, 네트워크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놓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때 비트코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당시 인도인들은 우간다의 최상류 지배층이었고, 산업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사업 마인드가 있었고 고급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간다에서 이디 아민을 피해 영국으로 온 사람들의 모습이 아래 사진에 나타나 있습니다. 1970년대 난민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하고 세련된 자태가 흑백의 사진 속에서도 도드라집니다. 1970년대 영국 내 인도인이 37만명으로 크게 늘어난 이유는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인도인 축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회나 주류는 해외로 이민을 가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의 주류는 평창동이나 한남동이나 청담동에 살지, LA이나 런던에 살지는 않습니다. 아프리카계 인도인의 영국 이주는 세계 이민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특정 지역의 지배 계층이 다른 지역으로 집단 이주한 사례입니다. 쫓겨난 인도인들을 받아들이길 본국에서조차 꺼리고 있을 때, 영국은 적극적으로 우간다 인도 난민을 받았습니다. 전임 총리 데이비드 카메룬은 아프리카 인도인의 영국 이주를 인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민이라고 말했습니다.


파키스탄인은 어떤 위상을 가지는가? 평균 재산, 평균 급여 모두에서 파키스탄인은 인도인과 비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체 평균보다 밑에 있습니다. GCSE와 A Level 성적에서도 전체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얻습니다. 인도인들이 주로 전문직에 종사한다면, 파키스탄인들은 동네 슈퍼나 우버 택시에서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파키스탄인 성공 사례는 없는가? 런던 시장이 파키스탄 사람이며, 전임 재무부 장관도 파키스탄 사람입니다. 똑똑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 많습니다. 런던 시장 사디크 칸은 파키스탄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 런던 남부 투팅 지역에서 자랐는데 어려서부터 부모가 육체노동하는 것을 보았고,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파키스탄 친척에게 보내기에 바빴던 것을 기억합니다.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많이 당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권투를 배웠습니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훌륭한 런던 시장이 되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입니다.


인도인의 성공과 파키스탄인의 고생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간다 쿠데타가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즉 영국에 온 인도인은 처음부터 엘리트였고, 파키스탄인은 본국에서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왔습니다. 모두 빈손으로 왔지만,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온 이민과 그것 없이 온 이민 간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세대가 더 지나면 그 차이는 줄어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영향은 없는가? 한 인도인 친구는 인도는 힌두교고 파키스탄은 이슬람인 것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인도가 파키스탄보다 잘 살기는 하지만, 힌두교 나라가 이슬람 나라보다 전체적으로 잘 사는 것도 아니니까요! 갑자기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소환되고 복잡해집니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슬람은 종교지만 힌두교는 종교가 아니라 삶의 시스템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힌두는 열려 있고, 무슬림은 닫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소환되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까지 동원됩니다.


실제로 영국의 통계에 의하면, 위와 같은 종교적 해석에 타당성이 부여됩니다. 파키스탄인 무슬림들은 자신들끼리 뭉쳐서 커뮤니티를 이루고, 무슬림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파키스탄인 무슬림 문화가 주류 영국 문화와 잘 융화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네트워크에 갇히는 효과가 납니다. 그러나 힌두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이슬람처럼 노력하지 않으며, 영국인들과 교류하고 융화되는 것을 꺼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화 포용의 차이가 인도계와 파키스탄계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막스 베버식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 세대가 더 지나도 인도계와 파키스탄계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외 이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잘 준비되어야 하고, 잘 융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도계와 파키스탄계의 영국 내 위상을 살펴보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아 참! 산업의 중추 세력인 인도인들을 하루아침에 쫒아 낸 우간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독재자 이디 아민은 반대자 삼십만병을 살해했고, 경제를 폭망시켰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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