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치
지난 4월 5일 영국 여왕이 TV에 나와 COVID-19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여왕의 위로가 영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위로가 되었다(comforting)’ ‘감명받았다(impressed)’는 대답이 주를 이룬 가운데 인상적인 반응은 ‘나는 군주제에 찬성하지 않지만, 여왕을 좋아한다’라는 멘트였다.
같은 시간 총리가 입원했고, 다음 날 집중 치료실로 옮겨졌다. 브렉시트라는 난제를 딛고 COVID-19의 혼란을 넘기 위해서는 보리스 존슨의 자신감 넘치는 리더십이 영국에 필요하다. 최고 의료진도 총리를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영국 사람들의 상실감은 매우 클 것이다. 마일드한 증상이 하루 만에 악화되고 있는데 COVID-19가 참으로 요망하다. 모두가 그의 쾌차를 바라는 마음이다.
런던시장 시절 자전거 출근 모습이 국내 언론에 소개되면서 보리스 존슨을 처음 알게 되었다. ‘정치적 야심이 있구나’ ‘이미지 메이킹을 잘하네’ ‘검소하네’라고 생각했다. 런던에 와보니 많은 사람이 자전거로 출근하고 있다. 검소한 것도 아니고 마찬가지로 쇼도 아니다.
웨스터민스터에서 트라팔가 광장으로 가다 보면, 조그만 골목이 나오고 거기에 Downing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있다. 관광객이 사진 찍는 모습이 없다면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는 작은 골목이다. 다우닝 9번지, 10번지, 11번지, 12번지가 붙어 있는 영국식 테라스 하우스가 그 골목에 있다. 특별한 것이 없는 우중충한 건물이다.
10번지는 총리의 집무실이자 거주지다. 대형 관저를 상상하면 곤란하다. 10번지에는 내각 회의를 개최하는 회의실, 응접실, 의전실과 몇 개의 집무실이 있다. 2층에는 방 두개짜리 거주 공간이 있다. 전통적으로 10번지 내부에 총리가 살고, 11번지에 재무장관(Chancellor of the Exchequer)이 살고, 12번지에 원내총무(Chief Whip)가 산다. 10번지는 윈스턴 처칠이나 마가렛 대처 같이 부부만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방 하나에 침실이 있고, 다른 방에 배우자가 쉴 공간이 있다.
아이들과 같이 사는 젊은 총리에게는 10번지가 너무 작다. 그래서 토니 블레어와 데이비드 카메룬 총리는 11번지에 살았다. 11번지에는 방이 네개가 있다고 한다. 대신에 재무장관이 10번지에 살았다. 자가 격리 중인 총리가 NHS 스텝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진을 보면 뒤에 11이라는 숫자가 선명하다. 보리스 존슨도 11번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쉬 수낙 재무부 장관이 10번지에 살아야 하는데, 와이프가 인도의 재벌인 리쉬 수낙이 방 두개짜리 공간에서 살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임 재무부 장관도 다우닝에 살지 않았다.
총리 유고 시에 누가 총리의 역할을 대행하는지에 대해 정해진 룰은 없다. 불문법의 나라답다. 국정은 내각회의가 책임지고, 총리는 내각회의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내각회의 할 때에 테이블에 앉는 순서가 있다. 예전에는 부총리라는 타이틀이 있었고, 현재는 수석장관이라는 직함이 있지만, 이는 명예를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수석장관이라고 해도 유고시에 자동으로 권한을 승계받는 것은 아니다. 냉전시기에는 핵무기 대행(Nuclear Deputy)이 지정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마저도 없다.
총리는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업무를 대행하는 사람을 지정한다. 현재는 외무부 장관 도미닉 랍이 지명에 의해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총리가 업무 대행을 지정하지 않았거나 못했으면, 내각회의에서 총리 대행을 정한다. 총리가 복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집권당은 대표 선출을 시작한다.
COVID-19가 유럽에 급격히 퍼지기 시작하면서, 핸드폰 알림이 띵띵하고 자주 울렸다. 주가 지수가 급락하고 어느 종목이 몇 프로 빠지는 것을 알리는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다. 보기 싫어서 알람을 꺼 놓았는데, 요즘에 다시 띵띵하고 울린다. 나도 모르게 알람 기능을 살려 놓은 것이다. 앞으로 며칠간 띵하고 울리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거 같아서, 알람을 한번 더 꺼 놓아야겠다.
COVID-19가 치료되면 폐가 손상 없이 회복된다고 한다. 완치되어 나타날 보리스 존슨을 기대해 본다. 숨 가쁘게 몰아붙이는 그의 퍼포먼스는 완벽한 폐 기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래 사진은 다우닝 10번지 뒤편에 있는 공터다. 공터 뒤로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가 있다. 그곳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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