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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n 17. 2020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눈물의 왕

런던 라이프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눈물의 왕
 

어제는 런던 골프 클럽(London Golf Club)에 다녀왔다. 길고 넓은 페어웨이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가꾸어진 골프장은 자연주의 그 자체, 낭만주의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시왕전에서도 쫒기어난 눈물의 왕’이 아닌 세상을 다 가진 왕 같았다.

오늘은 정원에 앉아서 일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사방의 나무와 꽃을 본다. 나는 내 정원의 왕이다. 곧게 자라야 마땅한 자작나무 가지를 꺾고 비틀어 우산처럼 만들어 놓고는 미소 짓는 ‘나는 왕이로소이다.’ 아름답게 자라는 꽃송이를 뜬금없이 꺾어 집안으로 들이는 ‘나는 왕이로소이다.’ 생명력 넘치는 포도나무 넝쿨이 조금 삐져나왔다 하여 길게 잡아당겨 잘라 버리는 ‘나는 왕이로소이다.’ 평평하게 가지치기를 하다가도 심통이 나면 둘쑥날쑥 가지를 치는 ‘나는 왕이로소이다.’

영국 사람들이 정원을 좋아하고, 잘 자라는 나무를 뽑고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를 심는 것도 왕이 되고 싶은 심사 때문일까? 자연스러운 게 좋지만, 내 맘에 안 드는 자연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자연 아닌 자연을 원하는 왕이 되고 싶은 것인가?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다. 남한의 지도자가 북한의 지도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북한의 지도자는 왕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왕은 권한이 없어서 더 이상 왕이 아니다. 길으면 네 해까지고, 어쩌면 올 해까지인 도날드 트럼프는 왕이 아니다. 짜르와 같은 권력을 행사하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짜르일 수 있지만, 후손에게 왕좌를 물려줄 수 없는 푸틴은 왕이 아니다. 엄마 품이나 정원이 아닌 곳에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외칠 수 있는 유일한 왕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뿐이다. 고로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왕의 여동생도 김여정뿐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고독의 쌍두마차인가?

영국 왕의 최대 관심사는 왕가의 존속이다. 비록 권한이 없을지라도. 권한이 있는 북한 왕의 최대 관심사는 영국 왕의 최대 관심사보다 100배는 더 깊고 클 것이다. ‘모가지 없는 그림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왕가가 존속하기 위해서 말이다. 왕가를 존속시켜 줄 수 없다면, 북한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북한의 경제 발전을 바라는 남한의 선의를 가에게나 줘버린다.

가드너는 누구나 폭군이다. 자연주의 가드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맘에 들지 않는 나뭇가지의 밑동에 폭탄을 설치하여 터트리는 가드너는 없다. 맘에 안 드는 나무를 쳐내면서 다른 나무에게 공포를 심어주기를 원하는 가드너는 없다. 가드너는 나무를 치면서 옆집 주인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가드너는 폭군이지만, 왕은 아니다.

북한의 지도자는 자신이 눈물의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리 될 소지가 크다. 일찍이 홍사용이 100여 년 전에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시를 써서 북한의 왕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있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 처음으로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 주세요하는  소리였지마는, 그것은 ‘으아!’하는 울음이었나이다.’

 세상에서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라고 시인은 말했는데, 북한의 지도자는 자신이 지배하는 이라면 어디든지 설움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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