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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n 18. 2020

비글과 따즈, 반려견과 사냥견 그리고 실험견

런던 라이프

비글(beagle)과 따즈(тазы), 반려견(pet)과 사냥견(hound) 그리고 실험견


어릴 적 개가 늘 집에 있었지만, 반려견을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손님으로 간 집에 개가 있으면 성가시다고 생각했다. 예쁘다고 말하는 예의를 차리는 것도, 놀아주는 척하는 것도 귀찮게 느껴졌다.


영국의 공원에 가면 사람보다 개가 더 많을 때도 있다. 개 산책시키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Dog Walker가 많은 개를 몰고 오는 경우도 있다. 개의 종류가 너무나 다양해서, 공원에 있는 많은 개가 종류가 모두 달라 보일 때도 있다. 도대체 개의 종류는 몇 가지가 있는가?

사람은 잘 변하지 않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개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예전이라면 지나쳤을 텐데 제목에 이끌려 클릭했다. ‘충성심이 좋은 비글’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충성심이라는 단어였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남편에게 점점 냉랭해지는 것 같고, 아들은 사춘기라서 아빠와 갈등을 빚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막내는 여전히 충성스럽지만, 그 충성의 끝이 가까이 있다.

충성이라는 단어가 가부장적으로 들린다면, 절대적 신뢰라는 말은 어떨까? 절대적이라는 단어가 거슬린다면, 신뢰에 대한 보답이라는 표현은 어떨까? 신뢰에 대한 보답,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게 필요하다고 느낀다. 반려견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클릭한 것은 개가 아니고 충성이나 신뢰에 대한 기사였을 수도 있다.



기사는 잔인했다. 그토록 귀엽고 사람을 따르는 비글을 실험용으로 사용하다가 안락사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비글이 실험용으로 적당한 이유는 종의 단일성이 뛰어나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깊어서 실험을 할 때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신뢰에 대한 기사가 아니라 배신에 대한 기사였던 셈이다. 내가 애완견을 가지게 된다면, 품종은 이미 결정되었다. 신뢰가 깊은 바로 비글이다.

비글은 사냥견(hound)의 일종이다. 이렇게 작은 개가 무슨 사냥을 했을까?

목수의 공구함을 보면, 비슷하지만 용도가 다른 공구가 많다. 작업할 때 보면 그 공구가 다 쓸모가 있다. 사냥꾼이 사냥할 때도 마찬가지다. Foxhound 같은 대형 hound가 스피드로 사냥감을 몬다. 사냥꾼은 말을 타고 쫓아간다. 덤블 속이나 흑 더미 어딘가로 사냥감이 숨으면, 사냥꾼의 주머니에서 비글이 나와서 덤블 속을 헤치며 사냥감을 찾는다. 비글은 후각이 발달했고 땅도 잘 판다.

무엇보다 비글은 귀엽고 예쁘다. 어쩌면 사냥감이 비글의 인상을 보고 안도해서 밖으로 나오는지도 모른다. 난 비글이다.


1066년 정복자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할 때에 가져온 개가 Talbot Hound였다. Talbot Hound가 영국에서 Greyhound와 교배하여 나타난 품종이 비글이다. 공인된 hound의 종류만 100가지가 넘는다. 그중에 후각이 가장 뛰어난 비글은 사냥이라는 게임의 마무리 투수인 셈이다

엘리자베스 1세가 좋아했던 비글은 여왕의 테이블에 항상 올라앉아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비글을 하사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개 앞에 Royal이라는 단어를 붙인다면, 그 수식어는 비글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그렇다. 난 Royal Beagle이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에게는 제뜨 카즈나(Жети Казна)라는 것이 있다. 유목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곱 가지 보물을 가리키는데, 지역과 유목의 형태에 따라 제트 카즈나는 다양하다.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 말과 개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쩌면 말보다 중요한 것이 개다. 개는 생산 수단이면서 친구다. 생산의 관점에서 말보다 뒤질 수 있지만, 친구의 관점에서 보면 말에 앞선다. 그중에 최고는 ‘따즈’라는 종류의 개다.

따즈는 Saluki와 모습이 유사하다. 지금은 유목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따즈의 가치가 줄었지만, 20세기 초반에 순수 혈통 따즈는 말 50마리와도 바꾸지 않았다. 현재 순수 혈통의 따즈가 카자흐스탄에 300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다. 내 지인은 따즈 10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자기는 말 500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즈 한 마리가 늑대 두 마리를 상대해서 이겼다는 전설도 있다. 과장이 없다면 어찌 전설이겠는가? 얼마나 좋았으면 그런 전설을 만들었을까?


늑대를 사냥하고 있는 따즈


따즈는 독립심이 강해서 유목 생활 중에 별도로 돌보지 않아도 알아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깊다고 하니 예외적이고 특별하다.

언젠가 우리 집에 비글이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은 아닐 것이다. 아내와 큰 아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반대하는 이유는 개를 책임지고 돌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며, 아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엄마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면 정답은 따즈다. 돌보지 않아도 친구가 되어 주는 개 따즈 말이다. 그런데 영국 개 족보에는 애석하게도 따즈가 없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hound 따즈


‘아이와 개는 때려서는 안 돼! 그게 스텝의 법칙이지. 너희가 이걸 이해했는지 항상 늑대의 눈으로 지켜볼 거야!’


따즈의 친구인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부르는 노래다. 그런데 따즈의 사촌인 비글이 실험용으로 쓰이고 있다. 미국에서만 매년 7만 마리의 개가 실험용으로 쓰이다 죽고, 그 대부분은 비글이라고...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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