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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pr 19. 2020

마그나 카르타와 종교의 자유

영국 정치

솔즈베리 평원에서 스톤헨지를 보고 나서, 솔즈베리 시내를 향하다 보면, 우뚝 솟은 솔즈베리 대성당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는 A3 용지 크기의 문서 한 장이 전시되어 있다. 1215년에 귀족들이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을 송아지 가죽에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써 놓고, John 왕에게 승인하도록 강제했는데, 그게 바로 마그나 카르타다.


왕이 민심을 잃으면 왕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나온다. 실패하면 반역자, 성공하면 역성혁명이 된다. 그런 용기가 없으면, 왕을 허수아비 세우고 자신이 실권을 행사한다. 실제로 마그나 카르타가 만들어진 1215년에 한반도에서는 무인들이 고려 왕을 허수아비 만들고 자신들의 권력을 휘둘렀다.

 

마그나 카르타는 왕이 할 수 없는 것을 문서화함으로써 왕의 권한을 제도적으로 제한한 최초의 문서다. 권력으로부터 종교의 자유도 여기에 처음으로 나오고, 대표 없는 곳에 세금이 없다는 미국 독립의 근거도 여기서 처음 등장하고, 법에 의하지 않고는 개인의 신체가 구속되거나 재산권이 제한되지 않는다는 민주주의 기본원칙도 여기에 처음 언급된다.


솔즈베리 대성당


고려시대 무인들이 송아지 가죽과 붓을 왕 앞에 가지고 와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써 놓자고 압박했다면 어땠을까? 수많은 무신정권의 칼잡이 중에 그런 괴상한 장수가 한 명도 없었을까? 그랬다면 마그나 카르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놓여 있을 것이고, 우리는 민주주의 종주국이라 주장할 수 있었을까? 혹시 고려시대 유적지를 잘 발굴하면 그런 비슷한 것이 나오지 않을까?


왕의 권한은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왕권신수설이다. 신은 구약 시대 이후로는 인간 세계에 직접 등장하지 않았으므로, 신의 뜻은 교황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중세의 왕권신수설 아래에서 신> 교황> 왕> 봉건영주(귀족)>농민의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마그나 카르타는 단순히 왕권에 대한 도전이 아니고, 교황권에 대한 도전이자 신에 대한 도전이다. 왕의 권한은 신의 대리인인 교황에 의해서만 제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그나 카르타에 가장 먼저 분노한 사람은 교황이다. 프랑스 군대를 동원해 마그나 카르타를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정신은 살아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흥미롭게도 마그나 카르타가 제일 먼저 강조하고 있는 것이 권력으로부터 교회의 자유, 성직자의 자유다. 지금 교황이라면 마그나 카르타를 만든 영국 귀족들에게 감사장을 보냈을 것이다.


헨리 8세의 종교 정책에 반대하여 재판을 받았던 토마스 모어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도 마그나 카르타다. 왕이 벌금을 메길 때는 성직자가 교회로부터 받은 수입을 고려해서는 안된다는 문구도 있는데, 이 문구가 종교인 비과세의 근원이다.


솔즈베리 대성당 내부 마그나 카르타 전시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교황청의 미사가 역사상 처음으로 중단되었고, 우리나라 천주교도 처음으로 미사를 중단했다. 개신교도 대규모 집회를 자제하고 있다. 어느 교회는 주일 예배를 진행하면서 억지스럽게 종교 탄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이 마치 정부인 것처럼 말이다. 집단 발병 지역이 아닌 곳에서 예배 진행 여부는 교회가 자체적으로 판단할 영역이니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


영국 성공회와 영국 정부는 예배 중단을 마지막 카드로 생각하고 뒤늦게 발표했다. 예배가 교인에게 위로가 되는데, 이는 노인 계층에서 더욱 특별하다. 감염 위험과 예배의 효용을 저울질하다가 감염 위험이 더 크다고 생각해서 뒤늦게 중단을 선언했다. 바이러스 취약 계층인 노인들이 감염을 줄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좀 늦은 감이 있다. 어쨌거나 이러한 상황 자체가 노인들을 근심에 빠트렸다.


유럽에서 예배의 중단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축구의 중단이다. 유럽 모든 리그에서 축구가 중단되었다. 집에 격리되어 있는 사람들이 낙이 없다. 축구만 있다면 집에서 피자를 먹으면서 얼마든지 격리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상황이 조금 호전된다면 무관중 경기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축구 중계를 일부 재개하는 것도 국민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좋다. 고려해 볼 만하다.


종교의 자유 못지않게 축구의 자유가 소중한 유럽인이 참 많다. 영국의 대표적 이야기 꾼 Michael Morphurgo의 소설 War Horse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럭비는 웨일즈인에게는 종교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영국인에게 축구가 그런 식으로 종교다. 그러나 축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아니고 코로나 바이러스다. 예배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여러 모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조속히 극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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